아버지의 밥상
아버지의 밥상
  • 이도경
  • 승인 2021.01.1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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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 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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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은 어려웠던 시대였다. 그 어려웠던 시대에 누구나 먹거리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배가 고파 산과 들에 열매로 굶주린 배를 채웠던 시절의 추억이 그리운 사람도 있다.

요즘이야 넘쳐나는 먹거리로 밥에 대한 소중함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삼시세끼 밥을 대할 때마다 옛날 가족에 대한 생각에 마음이 짠해진다.

우리가 먹는 밥 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정월대보름에 먹는 찰 오곡밥, 건강을 지키기 위해 먹는 건강식 잡곡밥과 현미밥, 별미로 먹는 보리밥, 보통 가정에서 주식(主食)으로 먹는 쌀밥 등이 있다.

나는 밥 중에 쌀밥이 가장 맛있다.

밥솥을 열 때 피어오르는 하얀 김에서 풍기는 고소한 향기가 좋고, 혀끝에서 부드럽게 구르는 식감이 그 어떤 밥보다 좋다.

시골에서 보리밥만 먹고 자라서일까, 보리밥을 먹고 돌아서면 근기(根氣)가 없어서일까.

어린 시절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보리밥이 싫었다.

요즘 사람들이 보리밥을 건강식이라 해서 즐겨들 먹지만 나는 사 먹지 않는다. 입안에서 까칠하게 맴도는 느낌이 싫다.

어쩌다 어울려서 보리밥집에 가게 되면 나는 쌀밥을 주문한다.

우리 집안은 엄격한 유교 사상을 따르는 집안이라 아버지의 밥상을 따로 차렸다.

가족들과 겸상을 하지 않는다.

밥상이 차려지면 나와 여동생은 자연스럽게 아버지 밥그릇에 시선이 간다.

밥상에 오르는 아버지의 밥은 늘 쌀밥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밥을 담을 때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밥을 담았다.

식기에 반쯤 밥을 담고 날계란을 하나 깨어 넣고, 그 위에 밥을 다시 담는다.

보리밥을 싫어하는 큰딸의 식성을 아는지라 아버지는 숟가락을 깊게 뜨지 않고 밑밥을 남겨주셨다. 남겨주신 밑밥은 늘 내 차지가 됐다.

얼마 전에 동생 가게에 다녀갔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동생이 무심하게 한마디 툭하고 던졌다.

“언니야 너는 아버지 남겨주신 밥이 그렇게 맛있드나”하며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쌀밥을 항상 언니가 먹는 것이 너무 서운했다”고 했다.

동생도 쌀밥이 너무 먹고 싶은데 언니 때문에 내색도 못 해 봤단다.

모든 것이 언니 우선이라, 명절에 새 옷을 살 때도 언니만 사줬단다.

그러면서 일찍부터 내 것이 아니면 쉽게 뭐든 포기하게 되더란다.

“나도 똑같은 자식인데 둘째라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 슬펐다”는 동생,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시간이 지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포기라는 단어를 너무 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이 됐다고 한다.

동생을 배려하지 못한 어린 언니의 마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에게 죄송하고 동생에게도 너무 눈치 없는 행동이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동생의 서운한 마음과 아버지가 맏이를 더 챙기셨다는 마음을....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려가는 부모가 되어 돌아보니 맏이에 대한 사랑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동생에 대한 미안함을 갖게 했다.

그리고 동생이 자기 것을 쉽게 포기하는 마음을 갖게 한 언니가 미웠을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필자 또한 첫째를 좀 더 챙기는 마음이 있어, 둘째가 한번씩 섭섭함을 내색한다.

조만간 날을 정해 가장 좋은 쌀로 하얀 쌀밥을 짓고, 동생이 좋아하는 고들빼기김치를 담아, 간장게장을 곁들인 추억의 밥상을 차려 동생에게 대접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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