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7:11 (수)
소금수레를 끄는 천리마를 보았는가
소금수레를 끄는 천리마를 보았는가
  • 허성원
  • 승인 2021.01.11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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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천리마가 소금 수레를 끌고 태행산을 오른다. 말굽은 늘어지고 무릎은 꺾이고 꼬리는 처졌다. 살갗이 터져 진물이 흘러 땅을 적시고. 진땀으로 뒤범벅되어 비탈 중턱에서 끙끙대며 기를 쓰는 데 멍에를 떠받치는 것조차 버겁다. 백락(伯樂)이 우연히 지나다 그 모습을 보고는 마차에서 내려, 안타까이 탄식을 하고는 모시옷을 벗어 씌워 주었다. 그러자 천리마는 고개를 숙이며 콧김을 내뿜고 나서 고개를 들어 소리가 하늘에 닿을 듯 울부짖는다. 마치 쇠와 돌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왜 그랬을까? 이제서야 자신을 알아주는 백락을 만났기 때문이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편에 나오는 `기복염거(驥服鹽車,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끌다)`라는 고사로서, 우수한 인재가 그 재능에 걸맞지 않게 변변찮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논어 양화편(陽貨篇)에서 나오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다`(割鷄焉用牛刀)`라는 말과 상통한다. 말이든 사람이든 주인이나 윗사람을 잘못 만나세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기술이나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제록스의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기술은 스티브 잡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저 연구원들의 유희꺼리 수준에 불과했으니, 소금수레를 끄는 천리마와 다름없었다. 스티브 잡스에 의해 비로소 상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온 세상의 컴퓨터가 마우스와 그림을 가지고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표준 환경이 되었다.

옛날 어느 송나라 사람은 `손 트지 않는 약`(不龜手之藥)에 관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기술로 대대로 남의 솜을 빨아주는 일을 했고, 어느 날 한 객이 찾아와 그 처방을 백금에 사겠다고 했다. 이에 송나라 사람은 큰돈이 생기게 됨을 기뻐하며 처방을 팔았다. 객은 그 처방을 가지고 오나라에 가서 왕을 설득했고, 오나라는 그 약의 도움으로 월나라와의 겨울철 수전(水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오나라 왕은 땅을 쪼개어 봉토를 하사하였다. 장자 소요유에 나오는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 고사이다. 동일한 하나의 기술로 어떤 이는 대대로 남의 솜을 빨아주며 살고, 어떤 이는 한 나라의 봉토를 가진 영주가 되었다. 기술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영주를 만드는 핵심역량의 잠재력을 가지고도 겨우 남의 솜을 빨아 삶을 유지하는 생계 수단에 머물러 있었으니, 소금수레 끄는 천리마만큼이나 억울했을 것이다.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끈 것은 주인의 안목이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불균수지약이 남의 솜이나 빠는 데 쓰인 것은 애초 그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산업분야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같이 주인이나 산업분야를 잘못 만난 기술은 지금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발명 기술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것으로 인정되어야만 특허로서 등록될 수 있다. 그런데 등록된 특허의 활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대학 혹은 공공연구기관 보유 특허의 경우 넷 중 하나만이 실제 활용되고, 그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비율이 급격이 낮아진다. 기업 보유 특허는 사정이 좀 더 낫겠지만, 기술 변화의 주기가 짧은 사정을 고려하면 발명 기술의 수명은 길지 않다. 어떤 특허든 당초에 나름의 큰 포부를 가지고 출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특허가 어떤 이유에서든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그저 장식적인 기능으로만 명맥을 유지하니, 그 운명이 소금수레를 끄는 신세에 비할만하다.

일단 특허출원된 발명은 반드시 공개되어 누구나 열람이 가능한 상태가 된다. 한 해에 세계적으로 수백만 건이 출원되고 있으니, 그만큼의 많은 발명이 무더기로 공개되고 있는 셈이다.

그들 중에는 천리마나 불균수지약과 같은 기술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특허권자의 활용 능력이 미진하여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거나, 다른 산업분야에 옮겨서 사용하면 폭발적인 잠재력을 발휘할 수 그런 보석 같은 기술 말이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특허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혹은 기술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특허침해 문제로부터도 대체로 자유롭다.

그런 귀한 기술들이 아직 잔존하는 그들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백락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하수는 `자기 능력`을 다하고, 중수는 `남의 힘`을 이용하고, 고수는 `남의 지혜`를 이용한다(下君盡己能 中君盡人力 上君盡人能 _ 韓非子). 특허는 세계의 수많은 고급 발명자들의 지혜가 화체된 `남의 지혜`의 정수들이다. 남의 지혜를 그것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짜로 활용한다면, 그가 진정한 기업 경영의 고수이지 않겠는가.

소금수레를 끌고 있는 천리마를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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