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울타리를 허무는 여우들
과수원 울타리를 허무는 여우들
  • 경남매일
  • 승인 2020.12.2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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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우리 사회가 공정을

잃어버린 탓에

국민 대부분은

삼등 시민의 굴레를

쓰는 아픔을 겪고 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환영(幻影)이 올 한 해 전국에 몰아쳤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인 ‘아시타비’(我是他非)를 풀어낸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말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한자 버전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 공정을 무너뜨린 정치인들이 아시타비의 가장 큰 마당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올 한 해는 우리 사회가 공정을 잃어버린 탓에 국민 대부분은 삼등 시민의 굴레를 쓰는 아픔을 겪었다. 조국 사태가 몰고 온 공정 문제는 ‘그들만의 규칙’을 강요하는 거대한 힘이 됐다.

 여야 정치인이 사안을 두고 칼을 벼리고 맞서는 건 당연한 책무다. 칼을 쨍강거리면서 설전을 벌여야 우리 사회의 불공평이 걷히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서서히 균형을 잡는다. 우리 정치판에서는 아무런 논리가 필요 없다. 내 편 네 편만이 정치판에서 힘을 쓴다.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법안 무더기 처리는 개혁의 이름을 달고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를 증명했다. 검찰 개혁은 진행 과정에서 원래의 뜻이 흔들렸다. 목적을 잃어버린 검찰 개혁은 정부청사 앞에 놓인 시든 꽃바구니에서 찾을 수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은 검찰 개혁을 내세워 우리 사회의 공정을 쓰레기통에 넣는 꼴이 됐다. 훤히 보이는 속을 두고 대중의 눈을 감게 하는 힘이 공정의 허약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환영은 정치판을 돌고 역사의 장에도 휘몰아쳤다. 편 가르기에서 가운데 놓인 공정의 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단한 문학가도 자기편의 시각으로 역사를 제단하고 옳다고 강변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바탕으로 숱한 소설을 써낸 문장가도 공정보다는 자기를 택해 편향된 역사관을 내비친다. 자신이 쓴 공정의 안경은 자기편에게만 향하고 타인을 보면 깜깜해진다. 대한민국의 건국일도 오락가락해 중ㆍ고생은 시험에서 ‘대한민국 건국일이 언젠가요’ 하면 답을 찾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공정이 없는 역사의 멍석에서 날뛰는 불공정의 환영은 눈꼴사납기까지 하다.

 불공정의 강물은 대학가에도 흘러들어 불쑥불쑥 환영이 되어 튀어나온다. 대학가에 온라인 중간고사를 치르면서 공정성의 역풍이 몰아쳤다. 공정성 논란이 일고 대리시험 광고까지 버젓이 나돌았다. 최근 지역 대학교에서 터진 교수 채용 비리 의혹은 대학에서조차 공정은 몇 시간 쓰고 버리는 덴탈 마스크처럼 돼버려 탄식을 낳았다. 지역 대학교수들이 이달 초 관련 학과 신임 교수 채용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서 교수평의회도 긴급 성명을 내고 “교원 채용에서 특정인을 내정해 놓고 자격 요건과 세부 전공 분야를 설정해 채용 공고를 한 것은 ‘기회균등’이라는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수평의회의 “인사 공정성과 관련한 시비는 처음이 아니다”라는 언급에서 여러 차례 인사의 공정성이 허물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공정은 우리 사회를 바르게 돌게 하는 실핏줄이다. 우리 공동체의 구석구석에 막힌 공정의 통로가 모든 사람에게 호흡조차 어렵게 만든다. 아시타비를 무기 삼아 칼을 휘두르는 여당의 손에서 칼자루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공정을 버리고 한편에 쏠려 저가 논리를 갖다 대는 모양도 측은하다. 대학에서조차 공정의 판을 흔들어 자기 사람을 세우려는 행위는 과수원 울타리를 허무는 여우의 행동에 비견된다.

 우리 사회에 공정의 강물이 도도히 흐르지 않으면 강둑은 반드시 허물어진다. 강둑에 구멍을 내는 모든 불공정의 호미질을 멈추지 않으면 공멸의 기운은 드세진다. 이 기운이 주위에서 일어날 때 멈춤의 강한 반발이 더 크게 일어나야 한다. ‘전 국민 잠시 멈춤’이 코로나19 확산을 잡는 신호가 되고 아울러 불공정의 기운까지 꺾는 힘이 되는 바람이 부질없게 느껴지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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