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4:51 (토)
안내견 이야기
안내견 이야기
  • 오형칠
  • 승인 2020.12.14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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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칠수필가
오형칠수필가

김해로 이사 온 지 25년이 됐다. 그때부터 우리 약국 근처에 세탁소가 사라지고, 구제가게가 들어섰다. 언제 없어진 줄 몰랐다. "아, 세탁소 어디 갔지" 구제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그때 30대 중반인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세탁소, 언제 없어졌어요?" "4개월 됐습니다"

구제가게 입구에 개 한 마리가 잠자고 있었다. 양쪽 귀가 아래로 처져 있었다.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개가 내 시선을 멈추게 했다.

어느 날 여자와 마주쳤다. 잠자고 있는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개, 손님들이 무서워해요" "아니요, 안내견이라 순해요" 또 며칠이 지났다. 그날도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외국인 두 사람이 구제가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개 때문이었다. 그때 주인이 외국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 후 안내견은 입구에서 사라져버렸다.

가끔 부부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광경을 봤다. 또 몇 달이 지났다. 가게 앞 인도에 큰 플라스틱 상자가 보였다. 안내견 집이었다. 안내견은 하루 내내 잠자는 일 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안내견이 불쌍해 보였다. 갇힌 개를 볼 때마다 안내견이 됐다면 저렇게 살지 않을 텐데.

그 후 안내견에 관해 자세히 알아봤다. 안내견이라 해서 모두 안내견이 되지 않고, 훈련을 받은 후 합격해야 안내견이 된다. 합격률은 30%며 나머지는 일반인에게 30~40만 원에 분양한다. 안내견이 되는 첫 조건은 순종이다. 아무리 영리해도 순종하지 않는 개는 안내견으로서 자격이 없다. 첫째도 순종, 둘째도 순종, 셋째도 순종이다.

안내견 혈통은 `리트리버`가 제일 좋고 수컷보다 암컷이 좋다. 1년 퍼피 워킹이라는 훈련 과정을 거쳐 비용은 1~2억 원, 안내견 보통 5년 정도 일하다가 은퇴한다. 놀라지 마라, 한 마리에 7000만 원. 나는 안내견 아닌 안내견(?)을 바라보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저 개는 저렇게 살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아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어제 그 가게 앞을 지나면서 오랜만에 눈을 뜬 개를 보고 셔터를 눌렀다. 좁은 공간에서 초점 잃은 눈으로 나에게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나 좀 밖으로 꺼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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