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9:34 (목)
철학부재의 시대
철학부재의 시대
  • 이광수
  • 승인 2020.12.13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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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요즘 유명 대중가수의 노래 `테스 형`이 인기다. `ㆍㆍㆍ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테스 형!/ㆍㆍㆍ` 세상에 대한 원망인지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의 절규인지 모르지만, 곡 자체는 구슬프고 쓸쓸하다. 트로트의 레트로 바람을 타고 리바이벌한 언택트 콘서트에서 열창한 노래라 대중들의 호응도가 뜨겁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처한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이 한가득 묻어난다.

코로나19의 창궐로 숨쉬기조차 힘든 답답한 일상에다 둘로 갈라져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치판에 대한 분노의 저항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왜 그는 갑자기 서양철학의 시조라는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며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회한을 노래로 표현했을까. 그 가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도 아닌 대중음악가다. 그런 그가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것은 지금까지 자기 주관이 뚜렷한 예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온 인생철학 때문이다.

식자들은 흔히 현대사회를 `철학 부재의 시대`라고 탄식한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의 개념은 사람의 기본, 근본과 통섭하는 말이다. 삶의 근본이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가치는 의문투성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본질은 `무지에 대한 지(知)`이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만사를 그르친다는 뜻이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것이 바로 `모름의 무지`이다. 물질문명이 정신세계를 압도하는 광 스피드 시대를 맞아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세상이 됐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켜져 온 도덕과 윤리의식은 물질문명의 거대한 파고에 휩쓸려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인간성 회복 외침은 허공중에 맴돌고 있다.

문화와 문명을 인류발전의 지고지선으로 삼아 자연 파괴에 몰두한 철학 부재의 인간이 행한 만용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먹고 버린 닭 뼈 더미와 넘쳐나는 플라스틱 쓰레기, 대규모 생물 멸종과 예측불허의 기후재앙, 코로나 같은 신종바이러스의 출현 등으로 지구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모두 인간성 상실의 철학 부재가 낳은 부작용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자. 한 마디로 한국교육에 영어 과목은 있어도 철학 과목은 없다. 대학에서 교양 선택과목으로, 단 1학기만 강의할 뿐이다.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대학입학 시험인 그랑제꼴에서 가장 어려운 과목이 철학논술시험이다. 그들은 중ㆍ고 과정에서 철학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반면 한국은 대학의 철학과는 돈이 안 된다고 거의 폐강해 버렸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철학 부재는 바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 분야에서 부조리한 현상으로 노정됐다. 타협 없는 한국 정치의 극한투쟁은 바로 정치철학의 부재가 낳은 부작용이다.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철학도 소크라테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된 서양 철학이 주류이고 공맹과 노장의 동양철학은 고리타분한 공리공론으로 폄하됐다. 세계백대문서의 으뜸이라는 주역(역경)마저 미신으로 치부하는 사회니 유구무언이다.

서구물질 문명 사대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가 뿌리 내려 꽃 피우길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물론 서구의 물질문명 덕분으로 배고픔은 어느 정도 면했다고 하지만 인간 정신의 본질인 정체성의 말살에 따른 혼란의 해악은 더 크고 깊다. 유행가 가수가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며 절규한 것은 바로 철학 부재의 우리 현실에 대한 자성적 탄식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철학은 어렵고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다.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생각하거나 가치를 판단하고 음미하는 작업이다. 그 가치나 본질에 대해 `왜 그럴까·`를 묻는 대화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왜· 라고 질문하는 것이 철학이다. 무식한, 올바르지 못한 말과 행동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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