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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이야기 - 광복의 기적
지난여름 이야기 - 광복의 기적
  • 하태화
  • 승인 2020.12.08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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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태 화수필가/사회복지사
하 태 화수필가/사회복지사

 지난여름 8월 15일은 코로나19의 와중에 `광화문 집회`로 인해 언론에서 시끄러웠다. 집회를 강행하겠다는 주최 측과 방역으로 불가하다는 정부. 결국, 법원에서 집회를 허용했고 이로 인해 감염자가 일시 증가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의 주목적이 광복의 기쁨을 상기하자거나 일본의 경제 패권을 경계하자는 것이 아니었기에 매우 아쉽다. 광복절이 가진 의미와는 전혀 다른 목적의 집회를 한 우리의 모습을 일본에서는 어떻게 보았을까.

 광복절은 우리가 일제 35년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해방의 직접적인 이유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게 패했기 때문인데,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자. 일본이 패하면 우리는 자연히 해방되는 것일까. 패전국이 되면 과거 약탈한 땅은 당연히 반환해야만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카이로 선언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27일, 미ㆍ영ㆍ중 연합국의 국가원수인 루스벨트ㆍ처칠ㆍ장제스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모여 향후 패전국이 될 일본에 대한 전략을 논의했는데, 이것이 카이로 선언(Cairo Declaration)이다. 이 선언에서 연합국은, 『①일본을 상대로 한 향후 군사작전에 대해 합의했다. ②잔인무도한 일본에 대해 육해공을 통해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 ③이는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응징하기 위함이며 영토 확장의 의사는 없다. ④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약탈한 태평양의 섬들을 몰수하며, 또한 만주ㆍ타이완ㆍ펑후제도를 중화민국에 반환하고, 일본이 탈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 세력을 추방한다.』라고 결의했다. 여기까지라면 한반도는 반환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선언에서 거론된 `만주ㆍ타이완ㆍ펑후제도`는 중화민국이 카이로 선언 당사국으로서 과거에 약탈당한 자국 영토에 대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한반도는 태평양의 섬도 아닐뿐더러 1차 세계대전 이전인 1910년에 이미 일본에 병합된 상태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들 3국은 『한국민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음을 상기하면서 앞으로 적절한 절차에 따라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 것임을 다짐했다.』 이례적으로 특별조항을 넣은 셈이다.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한반도는 이 선언에 참여한 나라와는 특별한 우호 관계나 이해관계가 없으니 거론되지 않을 수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의 정성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아니면 한반도에서 일어난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말살 정책에 대한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카이로 선언에서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의 독립에 관한 내용이 들어간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해방이 있게 된 마지막 단추는 포츠담 선언이다.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은 1945년 7월 26일 미ㆍ영ㆍ중ㆍ소가 독일의 포츠담에서 발표한 선언으로 트루먼ㆍ처칠ㆍ장제스ㆍ스탈린이 서명했다. 선언의 요지는 `일본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즉각적이고 완전한 파멸`에 직면하게 될 것을 경고한 것이며, 그 내용은 카이로 선언을 보다 구체화 시킨 13개 항목으로 되어 있다. 우리의 해방과 관련된 것은 제8항이다. 『제8항, 카이로 선언의 실행과 일본 영토의 한정 :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행되어야 하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된다.』

 카이로 선언에서 한반도의 독립을 결의하고, 포츠담 선언으로 인해 한반도의 해방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포츠담 선언에 소련이 참여하고 특히 종전 7일을 앞두고 소련이 정식 참전, 한반도는 해방의 기쁨도 잠시, 국토는 반으로 잘리게 되고 전쟁이란 아픈 상처와 휴전선을 남기고 지금에 이르렀다. 아프고 슬픈 과거사, 모든 것이 일본으로 인한 것임을 생각하면 지난여름의 광복절 이날 하루만이라도 우리가 하나 되어 반정부 시위보다 광복의 기적을 되새기는 날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날은 일본에 빼앗겼던 땅과 주권을 기적적으로 되찾은 감격스러운 날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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