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로 존재를 증명할 때다
횃불로 존재를 증명할 때다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0.11.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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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역사는 봉기의 횃불을

들 때 존재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교훈한다.

침묵은 역사의 진실을

덮는 괴물이다.

 역사의 굽이마다 봉기의 횃불이 타올랐다. 누가 주체였는가. 당연히 민초들이다. 민초는 말 그대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풀과 같은 존재다. 민초가 횃불을 들다 잘 못해 자신을 태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분명한 것을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바른 흐름이든 역류하는 흐름이든-`샛물`을 냈다. 가느다란 물길이 땅속에 스며들어 흔적이 없어지기도 하고 그 실핏줄 같은 물길이 본류가 돼 역사의 마당을 흥건하게 적셨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집행정지(직무배제) 조치는 헌정 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추-윤의 대결은 코로나19 확진자가 500명 대를 넘어서는 데도 최고의 이슈다. 추 장관이 윤 검찰총장을 몰아가는 형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직무배제 칼을 전격적으로 뽑을지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추 장관의 공격은 `영끌`다워 윤 검찰총장을 반드시 끌어내리겠다고 작심한 모양새다. 하기야 윤 검찰총장이 추 장관이 열거한 비위가 진실이라면 어깃장을 놓을 수 없지만 아무래도 노림수가 있다는데 마음이 끌린다.

 역사는 온전한 진실을 비추는가, 아니면 만들어진 사실을 비추는가. 개인적으로 뒤에다 한 표를 던진다. 역사는 모든 진실을 기록하기에는 허술한 구석이 많다. 문재인 정부가 세운 검찰총장이 그새 얼마나 변질됐으면 수많은 비위의 굴레를 씌워 자리를 뺏으려 하는가.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임을 다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칼을 휘두를 때 칼끝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은 말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윤석열 총장이 "살아있는 권력 눈치 보지 않고 수사하라"고 신임 부장검사에게 한 말이 화근이 됐을까? 상황에 따른 말이 역사의 진실로 둔갑하지만 말 뒤의 행위가 진실해야 바른 역사가 된다. 말에 그친 사실을 진실로 바꾸려는 행동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지금 추 장관의 행동이 그렇다.

 언론학에 `어젠다 설정 이론`이 있다. 어젠다를 협의적으로 중요 사건으로 보면 현재 윤 총장의 직무배제 논란은 현 역사의 중요 사안 가운데 가장 우선한다. 일간 신문의 1면 톱기사에 당당히 오르기 때문이다. 어젠다를 설정하기 위해 가장 좋은 전략이 구사되고 있다. 여기에 물불 안 가리고 응원하는 부대가 받치고 있어 역사의 진실을 뒤집는 일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조선시대 민중운동에는 민란과 변란으로 나눌 수 있는데 민란이 경제투쟁으로 본다면 변란은 정치투쟁이다. 민중항쟁의 횃불이 탈 때 고착된 사회는 조금씩 진보했다. 민란이 먹고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변란은 실제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최종 목표를 둔다. 조선시대의 변란은 달걀로 바위 치기였지만 신분제에 항의하는 횃불은 위협적이기도 했다. 추 장관의 직무 배제를 두고 대검찰청과 부산지검 동부지청 평검사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집단 반발하고 다른 검찰청에서도 집단행동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검란`이 일어날 기운이 돋아나고 있다.

 평검사들은 검찰 조직에서 민초다. 민초는 바람에 부는 대로 쏠려 눕지마는 부르지지는 않는다. 불의를 보고 순간 고개를 숙일 수 있어도 오래 숙이지 않는다. 역사는 봉기의 횃불을 들 때 존재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교훈한다. 침묵은 역사의 진실을 덮는 괴물이다. 촛불이 타락한 곳에 횃불이 타고 올라야 한다. 민초들은 횃불로 존재를 증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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