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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의 은퇴를 접하며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의 은퇴를 접하며
  • 공윤권
  • 승인 2020.11.05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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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윤권 전 경남도의원
공윤권 전 경남도의원

얼마 전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은퇴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세계 유력 국가의 정치인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 우루과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정치인 은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면서 새삼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미의 정치인이라고 하면 보통 체 게바라만을 떠올립니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후 기득권에 머물지 않고 다시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39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후 체 게바라는 혁명의 아이콘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남미에는 체 게바라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은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 책을 통해 무히카 대통령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였습니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책 제목으로 선정된 것은 대통령과 대비되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무히카 대통령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우루과이 대통령을 지내는 동안 재산이라고는 오래된 자동차 한 대와 허름한 농가와 농기구, 다리를 잃은 반려견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재임 기간에는 월급의 90%를 기부했고, 관저는 노숙자에게, 별장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내줬습니다. 정작 대통령인 자신은 쓰러져가는 시골 농가에 살며 낡은 차를 직접 몰고 출ㆍ퇴근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재임 기간에도, 또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았습니다. 물은 우물에서 길어다 쓰고, 빨래도 직접 하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무히카 부부가 오랜 기간 가꾼 꽃과 화초가 무성합니다. 무히카는 대통령이 돼서도 자신의 프로필에 `농부`라고 적었습니다. 얼핏 보면 외모도 그냥 시골 농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히카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험난한 혁명가의 역사입니다. 이 점에서 체 게바라에 못지 않은 남미의 혁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히카는 25살때부터 군사 독재에 맞서 게릴라 조직을 만들고 리더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35살에 체포돼 13년간 독방에서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12년의 밤`이라는 영화를 보면 무히카의 옥고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죽음과도 같았던 독방 생활을 극복하고 60세라는 늦은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됩니다. 그리고 75세의 나이로 우루과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게 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입니다. 그리고 무히카라는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그는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농부와 같은 삶을 살았고 가난함을 당연시하며 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입신양명과는 거리가 먼 대통령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삶의 가치가 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무히카의 유엔 연설을 보면 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발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935년생으로 올해 87살이 되는 노정치인의 은퇴가 잔잔하게 우리에게 스며드는 것은 대통령 무히카가 아니라 인간 무히카의 감동적인 삶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권위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라 가난한 농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무히카가 전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만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임 중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많은 정책을 제시했던 무히카 대통령은 퇴임 시에 지지율이 65%였다고 합니다. 퇴임 후에 수난을 겪는 우리나라의 대통령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우루과이보다 한참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정치는 아직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무히카와 같이 퇴임 후에도 전 국민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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