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1:46 (토)
착한 지역화폐의 안착을 기대하며
착한 지역화폐의 안착을 기대하며
  • 손용석
  • 승인 2020.10.2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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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석 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손용석 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세상의 돈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복권 당첨금 10만 원과 하루 온종일 노동을 통해 얻은 10만 원은 표면상 같지만 그 가치는 동일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은 돈이라도 어렵게 번 돈과 거저 생긴 돈의 가치를 다르게 생각한다.

행동경제학자 트버스키와 카네만은 사람의 무의식 심층구조에는 선과 악으로 투영되는 관념을 가지고 있어 똑같은 돈이라도 상황에 따라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상징성을 부여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심리적 회계 혹은 마음의 회계장부라 명명했다. 쉽게 말해 사람의 마음 속에는 회계의 자산, 부채, 자본계정처럼 저마다 다른 계정을 구분해 놓고 계정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해 돈을 저축하고 인출해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 심리적 회계와 무관하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령 월급 등 소득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을 식비, 공과금, 적금, 용돈 등 용도별로 의미를 부여한 후 구분되게 사용하는 것과 같다.

한편, 돈에 선과 악이 투영되는데 이는 어떤 돈은 착한 돈, 어떤 돈은 나쁜 돈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검은 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걸 보면 분명 돈에도 선과 악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재난지원금은 착한 돈일까? 악한 돈일까? 재난지원금에 대한 효율성, 비효율성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공방이 뜨겁다.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사람마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상징성을 다르게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돈이 악하고 선하게 되는 것은 우리하기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코로나19는 전염병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사람들 마음 속에 내재됐던 돈에 대한 도덕적 규범을 일깨우는 양면의 칼날일지도 모른다.

돈에 대하여 도덕성을 부여하는 움직임이 어느 때 보다 활발해진 것 같다. 그러한 움직임에 `지역통화운동`이 있다. 이는 현금 없이도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지역통화의 시초는 협동조합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로버트 오웬이 1832년 재화와 교환할 수 있는 `노동증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지역통화는 국가통화와는 달리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돈이다. 따라서 지역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아 지역경제 안정 및 활성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부의 편중화로 붕괴되는 지역공동체를 재구축하게 해준다.

대부분의 지역통화는 경제 불황기 등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발생해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로소득 폐지를 주창한 독일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은 노화하는 돈을 만들어 1930년대 전후 세계대공황이 발생한 시기에 오스트리아의 뵈르글이라는 도시에 지역통화시스템을 도입했고, 지역통화가 시행된 이후 그 도시에서 공공부채와 실업자가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996년 지역통화운동이 처음 알려진 이후 IMF 시기에 지역경제 활성화 및 실업 구제의 목적으로 지역통화가 시작됐고,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지역화폐가 발행되고 일정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공동체 내부의 결속과 통합력을 창출하는 지역통화운동의 선구적인 형태인 레츠(LETS)보다 유통 및 소비 촉진에 초점을 두고 지자체가 발행하는 지역화폐가 더 선호되면서 지역화폐의 선과 악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러한 논란의 원인에는 지자체 등 관주도의 지역화폐나 지역상품권 발행이 지역순환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측면에 방점을 둬 강조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지역화폐가 시장경제논리와 상업적 가치를 체현하는 모습을 보였다. 착한 지역화폐가 올바르게 안착되기 위해서는 관주도가 아니라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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