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3:19 (목)
간언부재의 불통정치
간언부재의 불통정치
  • 이광수
  • 승인 2020.10.25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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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국론이 사분오열된 혼란기에는 간신과 재방(在傍)이 득세하고 간언(諫言)하는 정신(貞臣)은 설자리를 잃고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다. 아첨에 눈먼 윗사람은 직언이나 고언엔 귀를 막고 아첨꾼들의 사탕발림소리에 귀 기울이며 태평성대인양 착각 속에 빠진다. 자신이 한 일의 공과를 구분하지 못한 채 간신들이 분식한 듣기 좋은 왜곡된 치적에 현혹돼 자화자찬만 늘어놓는다. 입만 벌리면 백성을 들먹이면서 비판의 목소리에 분노하고 과잉반응하며 매사 잘못은 백성 탓, 남 탓으로만 돌린다.

 우리의 지난 역사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간신은 폭군 연산군 때의 척신 유자광이었다. 그는 남이장군과 강순을 역모 죄로 몰아 죽인 공으로 훈봉 되어 권력을 잡았다. 영남 사림파의 거두 점필제 김종직과의 사적인 불화를 빌미로 `조이제문` 사초를 문제 삼아 김종직일파를 대역죄로 몰아 무고한 중신들을 수 없이 죽인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도 역사의 단죄를 받아 귀양살이로 눈이 멀어 죽었으며 그 일족은 멸문지화를 면치 못했다. 부관참시의 극형까지 일삼았던 간신 유자광도 끝내는 그 죄 값을 받아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권세의 말로가 비참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중국 당나라 충신 위징은 태종에게 올린 신하론에서 전한시대 유향(劉向)이 편찬한 설원(說苑)의 글을 인용해 육사신(六邪臣)과 육정신(六正臣)을 이렇게 논했다. 육사신으로는 나라의 녹만 축내고 단지 머릿수만 채우는 구신(具臣), 아첨꾼에 지당한 말씀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유신(諛臣), 중상모략과 참소만 일삼는 모리배인 참신(讒臣), 임금에게 불충하고 반역하는 적신(賊臣),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인 망국신(亡國臣), 감언이설로 임금의 눈을 멀게 한 간신(姦臣)을 말한다. 한편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 공복한 육정신으로는 인격이 고매하고 훌륭한 성신(聖臣), 어질고 자애로운 양신(良臣),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충신(忠臣), 지혜롭고 학덕이 높은 지신(智臣), 일체의 녹과 하사를 사양하고 절개를 지킨 정신(貞臣), 직언과 간언을 마다않는 강직하고 올곧은 직신(直臣)을 말한다. 지금 이 나라에 육정신에 해당되는 각료와 고위 공직자,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공개적으로 권력자에 아첨하는 법관이 영전하고, 권력주변에 기생하는 정치꾼들이 정무직을 한자리씩 꿰차는 엽관(獵官)의 시대라 유구무언이다.

 정조가 편찬한 육주약선(陸奏約選)에는 당나라 충신 육지가 덕종에게 올린 간언에 관한 상주문이 있다. `간언을 받아들일 때 이렇게 해 주소서. 과오를 고치려는 마음으로 서둘러 과오를 찾으며, 과오를 고쳐주는 이를 선량하다고 여기고, 과오를 알려주는 이를 현명하다고 여기십시오. 간언이 많으면 군주가 간언을 좋아한다는 것이며, 간언하는 말이 곧으면 군주가 현명함을 보여 줍니다. 간언하는 이가 분별없이 멋대로 굴면 군주가 남을 용서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간언하는 말이 많으면 군주가 남의 의견을 따를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간언하는 이에게 작위와 포상의 이익을 주면 군주도 안정된 통치의 이익을 얻으며, 간언하는 이가 충성을 다한다는 명성을 얻으면 군주 역시 간언을 채택한다는 명성을 얻습니다. 간언하는 이가 잘못하더라도 군주에게는 불미스러운 일이 없으며, 오직 간언이 절실하지 않을까 두렵고 천하의 일을 듣지 못할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구구절절 금과옥조 같은 명언이다. 이 시대에 이런 간언을 장려하고 기꺼이 수용해 잘못을 반성하는 정치지도자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아마 간언하는 자는 간신모리배들의 참소로 신상까지 탈탈 틀려 좌천 아니면 면직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치국치민의 근본은 변함이 없다. 권력유지에 급급한 채 간언을 멀리하고 재방들의 아첨에 취해 있다가는 결국 성난 민심의 이반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불통지도자는 한 때 운이 좋아 권력자가 될지언정 범부보다 못한 부도덕한 존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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