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1:46 (수)
홍콩 거장 7명의 홍콩 연가 `칠중주`
홍콩 거장 7명의 홍콩 연가 `칠중주`
  • 김중걸 편집위원
  • 승인 2020.10.2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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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홍콩의 거장 영화감독 7명이 홍콩에 보내는 연가(戀歌)인 `칠중주:홍콩 이야기`가 추심(秋心)을 흔든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인 이 영화는 지난 21일 오후 8시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로 상영됐다. 가을밤 야외극장 대형스크린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홍콩사람과 홍콩의 도시, 홍콩 이야기는 홍콩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마음은 가을 서릿발처럼 차갑고 먹먹하다. `사비추(士悲秋ㆍ선비가 가을을 슬퍼한다)`처럼 올 가을은 참으로 슬프다. 코로나19로 더욱 우울하고 가슴이 아린다.

`칠중주`는 이름만 들어도 영화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훙진바오(홍금보), 안후이(허안화), 패트릭 탐(담가명), 위안허핑(원화평), 린린둥(임영동) 조니 토(두기봉), 쉬커(서극) 등 홍콩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감독 7명이 만든 영화 7편을 엮은 옴니버스영화다. 각기 10~15분 남짓의 짧은 영화 안에는 1950년대 이후 홍콩 사회의 단면과 감독 각자가 품은 추억들이 따뜻하게 담겨 있다.

거장 감독들은 말 그대로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들이기도 하다. 액션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각자의 위치를 점해온 이들에 대한 평가는 현재에 이르러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1980년대와 1999년대 아시아 영화를 주름잡았다는 사실이다.

`칠중주`의 큰 주제는 전통과 과거에 대한 추억, 그리고 이후 세대에 거는 일말의 희망이다.

홍금보가 연출한 `수련`은 주인공 어린 홍금보 등 유소년 무술 꿈나무들이 대거 등장한다. 무술 수련을 게을리하다 스승에게 혼난 뒤 정신을 가다듬는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끝부분에 나이 든 실제 홍금보가 등장해 시간의 속절없음을 전하고 추억의 소중함을 설파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허안화의 `교장 선생님`은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헌신적인 마음을 나눴던 1960년대 초등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을 불러온다.

담가명은 `사랑스러운 그 밤`에서 영국 이민으로 헤어지게 되는 연인의 풋풋한 첫사랑을 전하며, 원화평은 `귀향`에서 쿵푸 마스터 할아버지와 손녀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 준다.

조니 토는 `보난자`에서 1999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아시아 금융위기와 닷컴 버블, 사스 위기 등을 거친 극적 반전의 시대에 주식투자에 열중했던 청춘들의 모습을 그렸다.

임영동의 `길을 잃다`는 홍콩의 과거를 고집스레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추억하며 서극의 `속 깊은 대화`는 소통 불가능성이 지배하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동시대 영화와 감독들에 대한 애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칠중주`는 한평생 영화 만들기에 헌신해온 7인의 걸출한 감독들이 삶의 동반자였던 `홍콩`이라는 공간과 그 역사에 바치는 사랑 고백이다.

이 영화가 2020년 올해 칸 국제영화제의 선택을 받고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을 연 것은 의미심장하다. 세계 영화계가 홍콩 거장들에게 보내는 예우이자 홍콩에 보내는 지지로 읽힌다.

영화 `칠중주`에서 관통하고 있는 것은 홍콩을 추억하게 하고 홍콩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 담긴 차분하고 담담한 홍콩사람들의 모습과 도시의 모습은 마치 아쉬운 손을 놓고 떠나려는 이별 장면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착잡하고 아련하기까지 하다.

올해 BIFF에는 개막작 외에도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가`(2000년)와 허안화 감독의 `사랑 뒤 사랑(Love After Love)`(2020년), 앤슨 호이샨 막 감독의 `친애하는 홍콩`(2020년) 등 홍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초청돼 홍콩을 추억하게 한다.

2020 칸 선정작 중 `칠중주`, `반도` 등 23편이 BIFF에서 선보인다. 이들 영화는 코로나19로 상영되지 못하다 BIFF에서 오프라인으로 열게 돼 영화 한 편 한 편이 귀하다. 그리고 지금 홍콩의 이야기는 더 존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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