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머리 치레거리①
한국인의 머리 치레거리①
  • 신화남
  • 승인 2020.10.14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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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남신화남뷰티 갤러리 대표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신화남신화남뷰티 갤러리 대표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 원수로서 외국을 방문할 때 사진을 보면 항상 모자를 쓰고 있다. 이유는 멋을 내기 위한 패션이 아니라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왕관을 현대 사회에서 자주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대신 모자를 쓰는 거라고 한다. 1년에 단 한 번 왕관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여왕이 매년 가을 국회 개원 때 연설하기 위해 버킹엄 궁에서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까지 네 마리의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이동한다. 머리에는 다이아몬드 2868개, 진주 273개, 사파이어 17개, 에메랄드 11개, 루비 5개(주한영국대사관 자료)로 치장한 화려한 왕관을 쓴다.

사람들은 이렇듯 여러 이유로 머리에 장식을 해 꾸며왔다.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다소 다른 면은 있지만 대개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혼인 여부에 따라서 머리 모양새나 장식을 달리했다. 남자 미혼은 댕기머리를 검정 띠로 묶었고, 기혼은 상투를 트는 게 보통이었으며, 여자 미혼은 붉은 천으로 묶은 댕기머리를, 기혼은 비녀를 꽂은 쪽머리를 했다. 또한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머리장식이 다양했는데 치레거리의 재질이나 문양 혹은 모양을 달리하기도 했고, 여성은 비녀로 신분의 차이를 드러내기도 해 남녀에 따라 장식을 달리하기도 했다. 여성들이 가체와 귀금속 등의 치레거리로 부(富)와 신분을 표현하려 했다면, 남성들은 상투 위에 상투관을 얹고 다시 그 위에 탕건을 착용한 다음 각종 관(冠)을 올려줬다. 이처럼 머리장식은 상징적 의미나 장식적인 의미로써 지위나 신분, 직업, 계급, 혼인 여부, 남녀 구분, 부의 상징 등을 나타냈던 것이다.

머리장식은 머리카락을 정돈하거나 가꿔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며 이때 쓰이는 장식 거리들을 `치레거리`라 일컬었다. 머리장식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복잡하고 방법도 다양했다. 머리 치레거리는 크게 수식과 관모로 구분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중국, 일본은 같은 한자문화권으로 역사적으로 꾸준한 교류를 해 왔다. 이로 인해 세 나라의 머리장식은 시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면이 많다는 특성을 보인다. 이들 머리장식들은 형태에 따라 크게 자연스럽게 늘어뜨려 묶거나 얹은 형태인 수식과 장식적인 용도나 의례에 따른 관을 쓴 관모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수식(首飾)은 머리를 묶는데 이용되거나 머리 위에 꽂아 치장하는 장신구로 고정과 장식의 용도로 사용됐으며, 여성용에는 비녀, 첩지, 떨잠, 댕기, 앞꽂이, 뒤꽂이, 떠구지, 머리를 땋을 적에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 하려고 넣는 다리 등이 있고, 남성용으로는 동곳, 풍잠, 관자 등이 대표적이다. 관모(冠帽)는 머리에 쓰는 쓰개의 총칭으로 신분 표현의 기능과 의례에 따라 격식을 갖추기 위한 격식의 기능, 심미적 기능 및 더위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실용적 기능 등을 지녔다. 관모에는 금관, 상투관, 면류관, 익선관, 화관, 족두리, 패랭이, 삿갓, 고깔, 전립, 유건, 탕건, 떨잠, 쓰개가리마 등이 있다.

주로 여성들의 전유물이 많았던 수식에 관한 최고의 기록은 `수서(隋書)`에 신라 부인들은 머리를 땋아 동이고 오색구슬로 장식했다는 기록이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금뒤꽂이, 고구려 벽화에는 여인들이 머리띠 같은 것으로 머리를 동이고 댕기와 함께 머리를 치장한 그림, 통일신라 때의 장식빗과 장식비녀 유물, 고려의 여자들이 출가 전에는 홍색 나(羅)로 머리를 묶었고 출가 뒤에는 머리를 틀어서 홍라로 묶고 작은 비녀를 꽂았으며, 남은 머리는 뒤로 늘였다는 기록 등에서도 오래 전부터 시대별로 머리장식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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