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47 (금)
"브람스를 좋아하셔요"
"브람스를 좋아하셔요"
  • 이광수
  • 승인 2020.10.04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요즘 모 지상파 방송국에서 월ㆍ화요일 늦은 밤에 방영하는 드라마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어 화제다. 수채화 같이 청순한 이미지의 남녀 주인공이 수줍은 듯 나누는 솜사탕 같은 달콤한 대화와 감미로운 배경음악이 하모니를 이루어 모처럼 연속극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드라마에 빠져드는 순간만이라도 코로나로 지친 심신을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아 큰 위안이 된다.

쇼팽콩쿠르까지 석권한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 박준영, 평범하지만 바이올린이 좋아 전공까지 바꾼 청순미의 극치 채송화, 대학재단 이사장의 딸로서 박준영의 영원한 파트너인양 하는 질투심 강한 이정경, 그녀를 사랑한 슈퍼마켓 사장 아들 한현호, 채송화의 단짝 친구 강민성, 그녀가 좋아하는 윤동윤. 이 여섯 명의 음악청춘들이 벌이는 사랑과 우정의 희비쌍곡선이 사뭇 흥미진진하다.

사랑이 고픈 청춘들. 음악이라는 예술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현실감각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예술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형이하학적인 요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그들에게 주식과 부동산처럼 대박 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주인공 박준영이 즐겨 연주하는 곡은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몽상, 꿈)`이다. 이 곡은 슈만이 1838년 작곡한 로맨틱한 느낌의 낭만파 피아노곡이다. 슈만이 클라라와 사랑에 빠졌을 때 평온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작곡한 곡이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그리고 그녀를 연모한 브람스의 러브스토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슈만은 30살에 그의 스승의 딸인 21살의 클라라와 결혼했다. 슈만과 브람스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났다. 그러나 슈만이 46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연모하는 여인 클라라의 곁을 지키며 그녀의 가족까지 돌본다. 그러나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사랑은 바보 같은 순애보였다. 슈만 사후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와 함께 슈만의 음악을 빛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필자는 영화광이지만 드라마는 즐겨보지 않는 편이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이나 재벌가의 딸과 가난한 청지기 아들의 사랑과 갈등 같은 진부한 스토리가 식상해 연속극과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나 매주 월화 늦은 저녁 시간에 방영되는 근래 보기 드문 풋풋한 청춘드라마에 나도 모르게 필이 꽂혀버렸다.

꿈을 잃은 이 시대의 20~30 청춘남녀들. N포세대로 자포한 채 자존감을 상실한 청춘들이 너무나 가엽고 안타깝다. 그들이 한껏 누려야 할 청춘의 특권인 꿈과 사랑은 값비싼 사치에 불과하다. 0.9명의 최저 출산율이 증명하듯 결혼 없는 나 홀로 족으로 만족하며 산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 희망적인의 메시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청년에 대한 정치권의 장밋빛 청사진은 빛바랜 지 오래다. 그들에게 희망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 격이다. 필자가 젊은 시절에는 비록 가난했어도 개천에서 용도 나고 자기 능력대로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용이 살 수 있는 개천 바닥마저 바싹 말라버려 희망의 싹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박준영과 채송화가 사랑의 시작을 알리면서 나누는 대화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는 배려의 관계보다 서로 못난 것도 아픈 것도 드러내어 보여주는 관계로 사랑하자." 그렇다. 청춘의 가슴은 뜨겁다. 비록 나에게 부닥친 현실이 답답하고 절망적일지라도 사랑만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열렬히 사랑해야 내가 좋아하는 일도, 희망도 생긴다. 꿈을 포기하고 용기를 잃은 청춘은 죽은 목숨과 다름없다. 젊음이 부린 무모한 도전과 만용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너그럽게 수용하고 격려함으로써 재도전할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고시촌 원룸에서 누렇게 뜬 얼굴로 공시에 목을 매는 기형적인 취업행태를 방기해서는 안 된다. 보다 먼 미래를 향해 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고 트로이 메라이를 사랑하는 청춘남녀들의 월화 러브스토리가 기다려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