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7:19 (목)
주역 해석의 `금약시`를 찾아서
주역 해석의 `금약시`를 찾아서
  • 이광수
  • 승인 2020.09.2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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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주역을 해석한 동서양 학자들의 저서와 논문은 아마 수천 편에 이를 것이다. 그것은 주역이 차지하는 학문적 위상이 높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주역공부가 일천한 필자의 경우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섭렵한 서책이 100여 권에 이르지만 역의 문지방이라도 넘을 때가 언제쯤 될지는 예측 불가다. 주로 중국역학자들의 주역해설서를 현토하고 번역한 책들을 보고 있다. 조금 독특하게 64괘의 계사해석은 6종의 역서를 동시에 병행해서 공부하고 주역비평서도 읽는다. 책마다 번역자의 해설이 조금씩 차이가 나고 주를 단 내용의 충실도가 다르기 때문에 병행독서는 비교분석이 가능하다. 물론 다소 시간이 더 걸리지만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지루한 감이 줄어드는 등 장점이 많다.

 필자도 처음엔 주역과 명리학이 한 줄기인 줄 알았다. 명리학을 공부한 후 주역을 시작하니 그게 아니었다. 주역은 의리역과 상수역이 양립한다. 왕필, 정이, 한강백, 성백만, 공영달, 정자의 의리학파와 경방, 채원정, 마융, 정현, 순상, 우번, 소강절, 주자 등 상수학파의 주역해법은 다르다. 의리역학파는 상수역을 술가들의 산명학(점술)으로 아예 무시하면서 혹평한다. 상수역은 주역에 오행을 접목한 점서(占筮)로 괘를 해석해 자연현상과 인간사의 길흉회린(吉凶悔吝)을 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역은 의리역과 상수역 어느 편에도 치우친 학문이 아니다. 좀 더 주역을 깊이 공부해보면 현학적인 의리역과 서법에 철저한 상수역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역에서 상수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의리역도 상수역도 역상으로 괘를 해석한다. 공자의 십익(十翼)과 다산의 주역사전을 보면 어느 편에도 치우친 해석을 하지 않는다. 의리역이 군자의 학이라면 상수역은 백성의 학이다. 주역은 지극히 현학적인 철학이지만 일반백성들의 일상에 관한 길흉회린을 예지하는 생활철학이기 때문이다. 주역을 학리적 현학으로 한정하면 사성(복희씨ㆍ문왕ㆍ주공ㆍ공자)이 괘를 짓고 괘사와 효사, 십익을 지어 천지자연과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예지한 의미가 무색해진다.

 필자는 주역해석의 묘수를 찾기 위해 고심한 끝에 다산이 창안한 주역사법과 삼역지의 해석법을 적용해 보면서 주역해석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다산 역시 공자십익의 설괘전을 보면서 그 해석의 변통을 몰라 고심했다. 이에 음식을 거의 손에 대지 않고 오로지 주역 책 하나만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밤낮으로 연구하니,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 입으로 읊는 것,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붓으로 쓰는 것 등 어느 하나도 주역이 아닌 것이 없었다. 마침내 갑자년(1804) 동짓날 무렵 그는 효변의 이치를 활연관통하게 되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고 64괘를 파죽지세로 64일 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정약용은 <여윤외심서>에서 효변을 그동안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건장궁(建章宮)의 천문만호(天門萬戶)를 여는 황금열쇠인 금약시에 비유하며 효변의 뜻을 깨닫게 된 감회를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이제 설괘전의 글과 그 변동의 방식을 취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384괘의 효사를 연구 모색해 나간다면 글자마다 부합하고 구절마다 부합해서 다시는 의심되어 이해되지 않는 일이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대저 그 오묘하고도 미묘한 언어의 의미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아무리 재주 많은 유학자라고 하여도 그 분 앞만 바라보고 도망갔었는데 이제는 마치 날카로운 칼로 대나무를 자르는 듯이 뜻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건장궁(建章宮)의 굳게 닫힌 열쇠를 쥐었으니 그 하나하나가 손을 뻗치면 만져질 듯합니다. 천하에 이런 즐거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방인)." 뒤늦게 학역(學易)한 미생이기에 선학들이 오랜 기간 천착한 주역에 방통(蒡通)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는 일로서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무모한 도전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처럼 성심을 다해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믿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역병의 창궐로 다들 힘들어 하지만 주역의 금약시를 탐구하는 필자의 하루하루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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