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2:16 (목)
전체주의 망령을 경계하며
전체주의 망령을 경계하며
  • 이광수
  • 승인 2020.09.20 2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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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독일의 정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당원이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차이(경험과 실제성), 진짜와 가짜의 차이(사고의 기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나 아렌트의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처해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 현상을 소름 끼칠 정도로 잘 표현한 말이다.

 지금 세계는 러시아의 인터넷 트롤(Internet Troll)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가짜뉴스와 거짓말, 미국 대통령의 입과 트위트 계정을 통해 전 세계에 퍼지는 거짓말의 성찬으로 넘쳐난다(미치고 가쿠타니, 진실의 죽음). 인터넷 트롤은 온라인에서 선동적이거나 부적절한 공격적인 댓글 또는 분열을 조장하는 콘텐츠를 게시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악플러나 키보드 위리어를 통칭한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희망에 부풀었던 인류 앞에 전개되는 세계는 기대와는 달리 디스토피아(Dystopia)로 치닫고 있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년>과 <동물농장>의 가상세계가 현실로 재현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에서의 거짓 말>에서 `역사가는 온전한 사실의 결이 얼마나 손상되기 쉬운지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 안에서 일상의 삶을 보낸다. 그것은 하나의 거짓말로 구멍이 뚫리거나, 집단이나 국가나 계급의 조직적인 거짓말로 너덜너덜해지거나, 숱한 거짓말로 은폐되거나 망각되고 부정되는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서 온전한 안식처를 찾으려는 기억의 증언과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증인이 필요하다. <동물농장>에서 위험신호기라고 일컫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소셜미디어가 이용자에 맞춰 여과한 정보만 제공해 이용자가 정보의 거품에 갇히는 현상)을 제거하는 정화장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제 세계는 진실의 쇠퇴라는 말이 가짜뉴스와 대안 사실이 익숙한 어구로 포함된 탈 진실시대(Post Truth)로, 사실의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을 주도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글로벌한 보편적 현상처럼 보인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20세기를 지배했던 전체주의 망령이 코로나19 팬데믹의 거센 역풍을 맞나 교묘히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수십 년 동안 진행된 프로파간다의 모순이 재현되고 있음에도 일반대중은 무기력하게 정치권력의 명령에 암묵적으로 굴종하는 체념사회로 퇴행하고 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한 `역사의 종말`은 다시 써야 할 `반동의 역사`가 되었다.

 사회학자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매우 위험한 순간에 처해있다. 긴급명령체제로 국민을 겁주고 압박하는 <예외국가>의 명령통제에 길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이 말의 함의를 진영논리에 편승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권력은 체재유지와 지지세력 확대를 위해 우중을 교묘히 이용해 왔으니까. 지금 코로나19 비상시국을 맞아 세계 각국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공권력으로 무차별 통제하고 있다. 본인의 수신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루 몇 통씩 문자메시지를 받아야 하고 자신의 동선이 실시간으로 추적감시당하고 있다. 우리는 조지 오웰의 <1984년>과 <동물농장>에 꼼작 없이 갇힌 신세로 전락했다. 이는 비용편익의 효용성에 매몰돼 이코노믹 애니멀리즘을 맹신한 인과응보로, 우리 모두가 자초해 도래시킨 감시사회의 덫이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방기한 채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인가. 무관심과 이성에 대신할 감성의 언어가 어떻게 진실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는지를 자각함으로써 자아와 주관성을 회복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행위중독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과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전체주의 망령의 준동에 저항할 묘수를 찾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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