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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오십이학역
공자 오십이학역
  • 경남매일
  • 승인 2020.09.1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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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공자 논어(論語)위정(爲政)편에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하고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하고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蹂矩)`라 했다.

이는 나이 50에 하늘의 뜻을 깨달아 좌고우면 경거망동하지 않고, 60에 귀가 순해져 남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고, 70이 되어 내가 할 바를 바르게 행하니 거리낄 바가 없다는 뜻이다. 사서 대학(大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와 방통(旁通)하는 말이다. 물론 공자는 성인의 경지에 오른 도통한 분이라 일반인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같은 필부필부(匹夫匹婦)라고 해서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공자도 자신의 경륜과 학문의 도를 믿고 50대 초에 북중국을 순회하며 자신의 정치철학인 민본치인(民本治仁)을 여러 제후들에게 유세했지만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다. 마치 상갓집 개처럼 14년간 떠돌다 인도(仁道)가 아닌 패도(覇道)를 꿈꾸는 비인(匪人)들에겐 자신의 정치철학이 마이동풍임을 알고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공자는 `가아수년 오십이학역 가이무대과의(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라 했다. 풀이하면, `앞으로 내가 몇 년 더 살아서 쉰 살이 되면 주역을 배워서 큰 잘못 없이 살다가 갈 수 있으리라`이다. 40대에 많은 제자들로부터 추앙받는 지성의 경지에 이른 공자였지만, 51세의 나이에도 아직 역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 한 결심이었다. 난해한 주역해석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후학들의 학습에 길잡이가 될 모범 해설서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주역연구에 몰두했다. 이미 지천명에 이른 나이라 뒤늦게 주역연구에 몰입하게 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밤낮으로 주역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눈병도 나고 죽간으로 맨 책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위편삼절韋編三絶, 사마천의 사기)였다니 성인에게도 주역에의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자의 이런 각고의 노력 덕분에 십익(十翼)이 지어져 후학들의 주역해석에 한줄기 서광이 비치게 된 것이다. 공자 이후 이천, 정자, 주자 등의 주역해석은 공자 십익을 표준으로 삼아 상수역학과 의리역학으로 발전시켰다. 물론 주역해석에 대한 여러 역학자들의 이론이 분분해 혼란상을 보이기는 했지만 동서양 주역학자들의 해석은 공자의 십익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맹과 노장의 대가인 윤재근 박사는 논어해설에서 공자 `오십이학역(五十以學易)`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있게 해설한다. "역이란 책의 경지는 넓고 커서 다 갖추고 있다. 하늘의 도도 있고 사람의 도도 있으며, 땅의 도도 있다(天地人: 三才). 이 셋이 겸하여 둘로 곱해 육이 된다. 육이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천지인의 도다. 도에는 변동이 있어서 효(爻)라 한다. 효에는 등급이 있으며 그래서 물건이라 한다. 물건은 서로 섞여 무늬라 하며 무늬는 다 같지 않다. 그래서 좋은 것(길)과 나쁜 것(흉)이 생긴다"고 했다.

공자 `오십이학역(五十以學易)`에서 `가이무대과의(可以無大過矣)`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람이 큰 실수나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도(道) 즉 기본을 지켜야 한다. 기본을 지키는 삶이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것을 말한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면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 이것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성의(誠意)를 다해 무자기(毋自期)를 실천함으로써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떳떳하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여러 상황 악화로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삶이 힘들 때 마음의 거울인 주역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 주역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마땅히 취해야 할 사람의 도리를 명쾌하게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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