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교회， 기업， 정부， 노동조합， 대학 등과 같은 거대한 제도적 기관에 권한과 책임을 위임했는데， 그 기관들이 시민들을 위해 제대로 봉사하지도 않고 심지어 위협하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인간이 기관과 조직을 인간을 위해 만들었는데， 그 조직과 기관이 인간을 위해 섬기지 않고， 오히려 인간이 기관과 조직에 끌려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이 문제는 반드시 인식돼야 하고， 해결돼야 할 심각한 문제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조직과 기관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 기관 외부에서 이뤄지는 비판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그 기관과 조직을 시민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전에는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내부에서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리더이다.

제도적 조직과 기관이 지배할 뿐 섬기려 하지 않는 이유는 일반적으로는 리더가 그 기관에 속한 사람들을 이해심과 올바른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버트 그린리프는 `섬김의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강조한다. 그린리프는 그의 저서 `서번트리더십 원전`에서 사람들은 앞장서서 이끌지만 최선을 다해 섬기는 유능한 종(Servant)을 진정한 지도자라고 여기고 그들 따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도자들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의사， 변호사， 교사， 엔지니어， 학자 등 기능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넘쳐나고， 그들 중에 지도자로 세워지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 중에 시민들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말만이 아니라 `종`과 `지도자`의 능력과 태도를 동시에 갖춘 사람을 필요하다. 이 사회가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이유는 사회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 시대정신 때문이 아니라 이런 섬기는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 땅에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받는 교회마저 그 안에서 끊임없는 불협화음으로 신음하고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기까지 하는 이유 역시 섬김으로써 이끌어나가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처음에는 종이나 하인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직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종의 마음으로 일하기에 마치 종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진정으로 섬기기 원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그 마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섬김을 받기 원하는 상황을 알아채고 먼저 섬김의 자리에 나설 줄 아는 사람이다. 이는 먼저 지도자가 되길 원하다가 나중에야 양심의 충동질이나 사회적 규범 때문에 마지못해 섬기는 체하는 지도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섬기는 지도자는 그래서 언제나 사람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생각한다. 솔선수범하여 움직이지만 따르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 다른 이들을 섬기면서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늘 조심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무엇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모두의 꿈을 실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일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적(敵)은 사악하거나 어리석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리에 앉은 착하고 영리하며 활기찬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이 지도자로서 섬기기를 포기하고 군림하는 태도를 가질 때， 또는 충분히 지도자의 자리에 설 수 있지만 지도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비판하고 지적하는 자리에만 머물려고 할 때， 그들은 그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적이 된다. 이 세상에는 비판하는 사람들， 전문가， 지식인， 연구에만 몰두하는 학자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불완전한 공동체를 좀 더 낫게 하기 위한 위험을 기꺼이 떠안으려는 서번트 리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