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13:54 (화)
`77 다시 시작`
`77 다시 시작`
  • 하태화 수필가 / 사회복지사
  • 승인 2020.09.0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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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화 수필가 / 사회복지사
하태화 수필가 / 사회복지사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창동예술촌은, 예전 마산 제일의 번화가였던 오동동, 창동 거리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권이 시들자 시에서 빈 점포를 활용해 만든 예술의 거리다. 3개의 테마 골목에 62개의 갤러리와 작업실 등으로 구성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공간이다.

 흥남철수작전은 한국전쟁 당시 북진했던 아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흥남에서 열흘 동안 193척의 배로 철수한 작전을 말한다. 영화 `국제시장`이 바로 흥남철수작전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데, 배에 실린 군수물자를 버리고 그 자리에 1만 4천 명의 피난민을 태워 이틀을 항해, 거제도에 내리게 된다.

 창동예술촌과 흥남철수작전의 전혀 어울리지 않은 두 가지를 거론한 이유는 창동예술촌의 한 갤러리에서 흥남철수작전으로 피난 온 실향민 예술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송창수 개인전, 77 다시 시작`. 한 해 동안 정성껏 그린 작품을 전시하는 개인 미술전으로 올해로 벌써 일곱 번째다. 그분의 나이가 올해 77세.

 그가 일곱 살 되던 해, 6ㆍ25 전쟁으로 인해 화목했던 가족이 흩어지고, 영화의 그 모습보다 더 깜깜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줄 사다리로 배에 올라 흥남철수작전 피난민의 한 사람이 되었다. 같이 배를 탄 가족이라고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여동생뿐. 부유했던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났고,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다. 거제도 난민 수용소를 거쳐 부산에서 시작된 소년가장으로서의 피난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좋아했던 그림도 시작했고, 성악도 공부했다. 그러는 동안 손주도 보았다. 그는 전쟁으로 인한 고통의 시기를 회상하면서 `아름다운 시련`이라고 했다. 다만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얻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하단다. 흥남 철수, 그때로부터 7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연 개인전의 이름이 `77 다시 시작`. 77세인 지금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삶의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미래와 존재의 의미나 목표 지향점이 없는 `낮은 수준의 삶`이고, 둘째는 삶의 의미가 있으며 미래를 보고 달려가지만 현재가 없는 `중간 수준의 삶`이며, 셋째는 삶의 의미가 있으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지 않고, 미래와 현재가 적절히 통합된 `높은 수준의 삶`이다. 미래와 현재가 적절히 통합되었다고 하는 말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여 즐기고 있는지를 보는 `내적 만족`과 현재의 일이 자신은 물론 사회공동체의 발전에 유익을 주는지를 보는 `의미와 보람`, 그리고 경제적 보상 여부의 `외적 보상`을 뜻한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삶`이란 이러한 세 가지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지속 발전 가능함을 말한다.

 삶의 목적을 안다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하다면 인간은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긴다. 삶의 목적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목적 없는 삶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창동예술촌의 실향민 예술가는 피난민 생활의 `아름다운 시련`을 겪으면서도 삶의 목적을 분명히 했음이 틀림없다. `77 다시 시작`이란 이름만 보아도 `높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이가 들면 육체적으로 노쇠해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직 나이로 늙음과 젊음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사회사업가 사무엘 울만은 80세 기념 시집 `청춘`이라는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고 마음가짐이니 (중략) 희망의 전파를 끊임없이 잡는 한 여든 노인도 청춘"이라고 했다. 일본의 여류시인 시바타 토요는 99세에 쓴 `비밀`이라는 시에서 "아흔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꾸는 거야, 구름도 타 보고 싶단다"라고 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면 지금 정립해 보자. 우리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때이니 내일의 꿈을 꾸어보자.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멋지게 한 번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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