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3:15 (금)
마스크 단상
마스크 단상
  • 경남매일
  • 승인 2020.08.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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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룡 향토사학자ㆍ시인

내 집은 고성읍에서 유일하게 언덕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있다. 시내에서 볼일을 마치고 경사가 급한 그 언덕길로, 이 염천 더위에 마스크까지 쓰고 걷자니 환장할 지경이다. 마스크가 흠뻑 젖도록 흐르는 땀에 가쁜 숨까지 더해진 나들이가 그야말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고약한 그놈의 코로난가 뭔가 사람 잡네`하고 속으로 푸념하게 된다.

땀을 닦으려고 마당에 있는 평상의 나무 그늘에 앉아 마스크를 벗으면서 문득 `꽃신`으로 노벨문학상 심사대상에까지 올랐다던,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재미 문학가 김용익의 단편소설 `겨울의 사랑`에 나오는 주인공 `뭉치`가 생각나 쓴웃음을 짓는다. 마치 내가 여름철에 마스크를 쓴 `뭉치`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뭉치`는 언청이였다. 그의 아버지가 옆집에 사는 호박같이 생긴 처녀에게 장가를 보내려 하자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맘에 드는 색시를 고른다며 시내에 나갔다가 `푸른 돛` 다방에서 흘러나오는 `겨울의 사랑`이란 노래에 홀려 `푸른 돛`에 들리게 되고 거기에서 종업원 `지안`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푸른 돛`에 출입할 때가 마침 겨울이었다. `뭉치`는 자신의 언청이를 보이지 않으려 감기를 핑계 대고 방한용 마스크를 쓴 채 매일같이 다방에 출입해 점점 사랑을 쌓아갔으나 마침내 봄이 오고 여름이 되자 더 이상 마스크를 쓸 명분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언청이를 지안에게 드러낼 수도 없는 `뭉치`의 슬픈 사랑의 얘기가 소설의 주요 스토리다.

만약 `뭉치`가 작금의 코로나 사태를 맞았더라면 여름철이지만 그는 오히려 반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나저나 코로나가 확산일로에 있다. 코로나 예방수칙은 철저히 지켜져야 하나, 지난 8ㆍ15 광복절 집회에 참석한 보수단체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ㆍ여당에서는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여론이 나빠져 울고 싶던 차에 뺨 맞는 격으로,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이들 단체에 몽땅 덮어씌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 단체는 어차피 우군이 아니니 이참에 단단히 혼을 좀 내야겠다고 작심했을 것이란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가만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데 마스크까지 해야 하는 이 고역은 여름철에 마스크를 할 수 없어 사랑을 잃은 `뭉치`의 고역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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