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품은 그대에게
꽃을 품은 그대에게
  • 경남매일
  • 승인 2020.08.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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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남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우리는 꽃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혹은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 진달래꽃이나 아카시아 꽃을 따먹던 기억이 있는 7080세대가 많을 것이다. 또한 작은 풀꽃을 따서 꽃반지를 만들어 여자 친구의 손가락에 메어주던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풀뿌리든, 꽃이든 일단 입에 넣고 보던 유년의 기억은 배고팠던 우리들의 가슴 아린 자화상이다. 꽃은 문화적, 정서적 재화이며 우리의 마음과 삶을 아름답게 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꽃이 없는 세상은 황무지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은 꽃을 노래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꽃에 비유하기도 했으며, 기념이 될 만한 특별한 날이나 소중한 날에는 상대방에게 꽃을 선사하곤 한다.

신라 향가에는 `헌화가`가 나온다. 신라 선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을 따라 동행하던 절세미인 `수로부인`은 잠시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이때 수로부인은 깎아지른 절벽에 만개한 철쭉꽃을 보게 됐다. 쉽게 꺾을 수 없는 꽃일수록 아름답게 보이는 법, 수로부인은 절벽 위의 철쭉에 마음을 빼앗겨 시종들에게 `누가 저 꽃을 꺾어올 자가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소를 몰고 가던 한 노인이 그 말을 듣고 꽃을 꺾어다가 부인에게 바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바로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지는 `헌화가`이다.

수많은 꽃마다 전설이 있고 애틋한 꽃말이 존재하고 있다. 이 헌화가에 나오는 철쭉꽃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이란다.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해 꽃처럼 예쁜 수로부인에게 꽃을 온전하게 꺾어 바친 노인을 어떻게 망령 든 늙은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러시아에 `미모사 꽃`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안드레이는 아내 클라바로부터 "오늘 아침 가게를 지나다 예쁜 미모사 꽃을 봤는데 너무 바빠서 미처 사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 날은 러시아 최대 경축일의 하나인 `여성의 날(3월 8일)`이었는데 안드레이는 아내가 갖고 싶어 하는 이 미모사를 사기 위해 많은 꽃집을 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다 팔렸다`는 말만 들었다. 마지막으로 간 꽃집에도 미모사는 다 팔리고 없었다. 그는 늙은 주인에게 "아내에게 미모사를 선물하기 위해 온종일 돌아다녔으나 구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힘없이 돌아서는 안드레이를 꽃집의 늙은 주인이 불러 세운다.

"젊은이, 내가 딸에게 주려고 남겨 놓은 미모사가 한 다발 있으니 가져가시오. 이 꽃의 임자는 당신인 것 같소."

안드레이는 미모사 꽃다발을 안고 행복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처럼 애틋한 이야기와는 달리 오늘날,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삶이 윤택해진 것과는 반대로 꽃의 의미는 퇴색돼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에 카네이션이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카네이션 값이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특수에 힘입어 꽃값이 턱없이 치솟았는데 올해는 카네이션이 통 팔리지를 않더라는 꽃장수들의 푸념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카네이션 판매량이 대폭 감소했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요즘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꽃보다 상품권이나 건강식품, 현금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정서를 각박하게 하고 인정과 사랑마저 물질로 평가하는 배금주의를 잉태시킨다.

카네이션뿐만 아니라 모든 꽃의 판매량도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1인당 화훼 소비액은 지난 2005년에는 2만 870원이었으나 2010년에는 1만 6천98원, 2014년에는 1만 3천867원으로 해마다 감소되고 있는 추세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우리 경제가 불황인 탓도 있지만 꼭 그 이유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옛날에는 지인의 집을 방문할 때나 소중한 사람을 만날 때는 꽃다발을 가지고 가곤 했다. 오늘날에는 꽃이 아닌 음료수나 빵 같은 것이 꽃을 대신하고 있다. 실용적 가치가 정서적 가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정신적 가치는 퇴색되고 물질주의가 팽배해지는 것 같아 서글프다. 이러한 현상은 인정과 사랑마저 돈으로 환산하는 배금주의를 잉태시킨다.

꽃은 배고픔을 달래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꽃은 인간의 정서를 아름답게 하고 지친 마음에 위안이 되기도 하며 희망이 되기도 한다. 김춘수의 시처럼 꽃은 의미를 띠고 있다. 상대방에게 꽃을 선사한다는 것은 꽃과 함께 나의 아름다운 마음을 주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은` 것이다.

마음 속 깊이 꽃을 품은 그대여, 아름다운 꽃향기가 그대의 인생을 향기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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