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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성본 결정구조와 양성평등
자녀의 성본 결정구조와 양성평등
  • 경남매일
  • 승인 2020.08.20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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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복 변호사
김주복 변호사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면서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을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녀의 혼인으로 자녀가 태어나면 자녀의 성본은 어떻게 결정될까? 현행 민법 제781조(자의 성과 본) 제1항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한다. 즉, 자녀의 성본 결정은 우선적으로 부의 성본을 따르도록 하면서, 보충적으로 모의 성본을 따를 수 있게 하는 구조로 돼 있다.

그렇다면 자녀의 성본이 결정된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자녀의 성본을 변경해야 할 사정이 생기면 어떤 절차로 변경할 수 있을까? 현행 민법 제781조(자의 성과 본) 제6항은 "자의 복리를 위해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자의 복리를 위해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에 관해 법원은 `자녀의 나이와 성숙도 등을 감안해 자녀 또는 친권자ㆍ양육자의 의사`를 고려하고, `자녀의 성ㆍ본 변경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 정도와 성ㆍ본 변경이 이뤄졌을 경우에 초래되는 친부와의 유대 관계 단절 및 정체성 혼란 등을 비교`해 자녀의 행복과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재판에서 성본 변경 허가 청구가 거부된 사례들이 있다.

한 사례는, 김씨가 자녀들의 친부인 정씨와 이혼한 뒤 홀로 2012년생 아들과 2014년생 딸을 키우다가 "자녀들이 친부와 1달에 2번 정도 만나는 상황에서 친부의 성과 본을 계속해 따르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자녀 둘에 대한 성과 본 변경 허가 심판을 청구했으나, 재판부(제주지방법원)는 "청구인이 자녀의 성본을 변경하려는 이유가 진정으로 자녀들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전 남편에 대해 남아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원인이 됐다고 보이고, 자녀들이 성과 본을 변경할 경우 비교적 완만하게 이뤄지고 있는 부와 자녀들 사이의 면접교섭이나 양육비 지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또 다른 사례는, 윤씨와 이혼한 이씨가 정씨와 4년간 동거하다가 재혼해 정씨의 아이를 임신했다. 이씨는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윤군)이 곧 태어날 동생과 성이 다르면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염려해서 윤군의 성을 정씨로 바꾸는 성본 변경 허가 청구를 했으나, 재판부(부산가정법원)는 "이씨와 정씨의 혼인기간이 아직 10개월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고, 윤군이 8살 나이로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 아직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 구체적 불이익이 발생했다 보기 어렵다, 윤군이 성ㆍ본 변경을 희망한다 해도 나이를 봤을 때 성과 본의 변경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때라고 볼 수 없다"라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자녀가 부의 성본을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오던 국민들의 인식도 차츰 변화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 2018년에 실시한 `자녀의 성결정제도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다수가 `부성주의원칙이 불합리하다`(67.6%), `자녀 성본 결정을 부모가 협의해 선택한다`(71.6%)고 답했다고 한다. 여성가족부가 2019년 하반기에 공개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자녀 성ㆍ본을 부모가 협의해 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70.4%가 찬성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인식변화 속에서, 지난 5월 경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여성ㆍ아동 권익 향상과 평등한 가족문화 조성을 위해 민법 및 가족관계등록법 등 관련 법률의 개정을 권고했다. 그 내용은 "가족생활 내 평등한 혼인관계를 구현하고 가족의 자율적 합의를 존중할 수 있도록, `부성우선주의`가 아닌 `부부간 협의`를 원칙으로 하고, 자녀의 성ㆍ본은 혼인신고 시 정하되, 출생신고 시 변경 가능하도록 한다. 또 일정 연령 이상이 지난 자녀가 본인 의사에 따라 성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민법 및 가족관계등록법 등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으니, 향후 법률개정 방향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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