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7:35 (화)
나를 위한 어머니의 밥상
나를 위한 어머니의 밥상
  • 경남매일
  • 승인 2020.08.19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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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자 김해시의원

더위에 지치면 입맛도 떨어지기 마련이니 더운 여름에 특히 잘 먹고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어머니 지론을 듣고 자랐기에, 여름 한 철 유달리 음식에 신경이 쓰인다.

올봄에 도요 감자를 사 놓고 딱 두 번 쪄 먹었다. 상자 그대로 뒀는데 여전히 싱싱하고 촉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 웬걸, 요리를 시작하자마자 얼굴을 타고 땀이 줄줄 흐른다. 에어컨을 켜려다가 요리하며 땀에 절어보는 것도 왠지 보람찬 과정 같아 선풍기를 틀었다. 가지찜을 하고 몇 가지 음식을 장만하느라 불 앞에 한 삼십 분 서 있었더니 온몸이 흠뻑 땀이다. 장마 뒤 불볕더위 온다던 뉴스가 적중했다. 가스레인지에 선풍기에 첨단 주방,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엌에 비하면 호사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 초기였던 어느 해던가, 막 시판된 38곡 미숫가루가 영양도 고루 갖추고 맛있다고 해서 두 봉지 샀었다. 그 맛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미숫가루 맛은 시원하고 고소하면서 구수했는데, 38가지 곡류가 서로 맛을 뺏어버렸나 싶어 직접 장만해 보기로 하고 어머니께 전화 드렸더니 찹쌀, 보리 콩만 볶아 만든 거라고 하셨다. 그 재료를 정확히 마련해 볶는데 너무 더웠다. 일부는 태워서 까맣고 해서 조금 시도하다가 결국 방앗간에 가서 볶고 빻았다. 얼음물에 시원히 잘 풀었으나 웬걸, 또 그 맛이 아니었다. 두세 가지 재료만 볶아서 절구로 빻아 우물물에 풀어 타 주곤 하셨던, 별것 아닌 솜씨 같은데 나는 그 맛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담박하던 그 맛과 닮아보려 용썼으나, 과거 이글대는 불 옆에서 땔감을 발로 차 넣으며 주걱을 휘저으시던 동시 동작이 생략된 탓이겠거니, 마당 켠 여름 한 철용 아궁이 불, 가마솥 열기, 감나무 그늘이 비켜 간 땡볕 아래 벌겋게 익어가던 어머니의 팔과 얼굴에서 흔들거리던 땀방울, 흠뻑 젖은 어머니의 등짝, 식구들 먹여야지, 그 손맛, 그 정이 부족한 탓이려니, 나는 흉내도 못 내고 말았다.

구이 팬 아래 숯불이 이글대지만 시원함이 유지되는 식당 서비스에 익숙한 요즘이다. 큰 식당인 경우 주방 에어컨을 가동하지만 가열과정을 거쳐야 하는 특성상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선풍기를 켜서 열기를 쫓아내지만 결국 땀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는 여름철 주방 일이다. 숯불구이 식당에는 화롯불 지피는 곳이 있다. 숯불 지피는 이는 화로에 불을 조절하기 위해 적당히 숯을 빼고 넣는 일을 반복하는데 한여름에도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는 일터가 그의 직장이다. 동시 동작 하시던 어머니처럼 그 얼굴과 팔이 벌겋게 익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도 그는 풍로를 돌려 그 작업에 열중한다.

감자채 볶고 가지찜 하는 주부의 아침, 땀 줄줄 흘린 덕분에 두루두루 고마움이 깃드는 아침이다. 한 상 차림 나를 위한 밥상이란 걸, 집 밥상 앞에서, 돈을 지불하고 당연히 받는 식당 밥상일지라도, 정말 귀한 한 상을 대접받는다는 고마움으로 대할 때 그 밥상은 영양 만점, 사랑과 정성이 스민 어머니의 상차림이 돼 줄 것이다. 오늘 아침 내가 마련한 밥상처럼 건강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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