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4:50 (토)
작업복 공동 세탁은 노동자 기본권
작업복 공동 세탁은 노동자 기본권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0.08.13 0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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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1990년 인기를 끌던 한 TV드라마가 있었다. 6.3사태에 가담해서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던 주인공이 운동권에 회의를 느낀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세계 각국을 돌면서 국가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내용의 이 드라마. 야망에 찬 남성들은 토ㆍ일요일밤 오후 방영시간에는 술자리도 마다했다.

당시 드라마에 몰입했던 20대 청년의 얘기가 떠오른다. 부친을 도와 산판과 채석장을 누비던 미래 사업가 청년은 해외 건설 현장을 누비던 드라마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청년은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작업복을 즐겨 입었다. 그는 작업복 상의를 걸치고 초밥집, 호텔 커피숍, 다방, 식당을 드나들었다. 작업복의 당당함이랄까?

작업복은 직업을 나타내고 그 일에 종사하기 위해 입는 특정한 복장이다. 사전적 의미도 경찰복, 군복 따위의 옷을 이른다고 돼 있다. 작업복은 신앙처럼 고귀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작업복에도 귀천이 있어서는 안 된다.

화이트칼라 직군의 작업복과 블루칼라 공장 노동자의 작업복 등 작업복은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기름때와 먼지가 묻은 노동자의 작업복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소중하고 귀중하다. 기름때, 먼지, 땀, 쇳가루부터 미세한 유리섬유까지 묻은 작업복은 어떤 노동자에게는 하루치 노동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 있는 훈장과도 같다.

많은 현장 노동자들은 노동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작업복을 입고 가정으로 퇴근한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여의치 않다.

유해물질을 잔뜩 묻은 작업복을 집안에 한 대밖에 없는 세탁기에 가족의 옷과 함께 세탁하기도 찝찝하고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세탁할 때가 많다고 한다. 훈장과도 같은 작업복이 가족의 건강을 위협하는 불편한 존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작업복에서 나오는 먼지와 때로 세탁기 고장도 잦다고 한다. 세탁소도 기름때 묻은 옷을 꺼리고 또 비용도 만만찮아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세탁을 한다. 일에 필수적인 작업복 세탁은 왜 노동자의 몫일까?

노동자는 안전하고 위생적인 작업복을 입을 권리가 있다. 다행스럽게 지난해 김해와 창원에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문을 열었다고 한다. 특히 김해는 경남도와 김해시, 민주노총, 김해지역자활센터가 협력한 전국 최초의 `노사민정(노동계, 회사, 민간, 정부) 모델로 노동자 작업복 공동 세탁소가 설립됐다. 창원은 창원지역자활센터가 관의 도움 없이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지원을 받아 운영을 시작했다.

창원과 김해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많아 공장 내 세탁소가 없는 노동자에게는 기본적인 노동복지가 실현된 것이다. 김해 `가야클리닝`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벌당 500원~1천원에 수거, 세탁, 배송까지 해준다.

노동자를 위한 작업복 세탁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광주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2018년 광주시장 선거를 앞두고 광주 산업단지에 설립되는 듯했으나 선거 이후 무산됐다.

경남도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김해 산단에 1호 작업복 공동세탁소가 만들어졌다. 세탁소 운영 첫 달 25개소에서 845벌을 시작으로 올해 1월에는 39개소에서 1천528벌, 3월에는 64개소에서 2천921벌의 세탁을 했다. `가야클리닝`는 지난 5월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2020년 주민생활 혁신사례 혁신사업` 우수사례로 선정되자 진주, 함안, 전남 여수, 영암 등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자활센터 등에서 벤치마킹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경남도는 지난달 16일 김해시의 사례를 바탕으로 거제,함안에 작업복 세탁소 2ㆍ3호점 설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는 등 도내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전남도 국가산단이 있는 광주, 여수, 영암 등에서 사업추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주도로 산업단지를 조성해 제조업 노동을 국가기반산업으로 홍보하고 육성한 역사가 40년이 넘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기본권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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