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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수사는 불법일까?
함정수사는 불법일까?
  • 경남매일
  • 승인 2020.08.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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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복 변호사

함정수사란, 수사기관(검찰ㆍ경찰) 또는 그 하수인이 특정인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교사하거나 범죄를 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후 범죄의 실행을 기다렸다가 그 사람을 검거하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대법원2007도4532 판결) 즉, 미리 만들어 놓은 함정에 걸려들게 해 범인을 잡는 수사 방법이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함정수사 방법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비 오는 날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여경이 직접 비 오는 날 밤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으슥한 길을 걷게 하는 방법이 그렇다.

함정수사는 크게 `기회제공형`과 `범의유발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회제공형`은 기회가 된다면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는 범인에게 단순히 범행 기회만 준 경우를 말하는 반면, `범의유발형`은 아직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데 말이나 행동 등으로 범행을 유도하는 경우를 말한다. 함정수사는 수사기관에게는 여러모로 편한 수사 방법이다. 보통 범죄는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불시에 일어나는 까닭에 수사기관은 범행 과정과 동기를 수사하고 증거를 확보하면서 용의자 범위를 좁혀나가야 하므로 수사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초래되지만, 함정수사는 범죄를 수사기관이 통제할 수 있는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범인 모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함정수사 방법이 사용되는 범죄 종류는 살인, 폭행, 성폭행 같은 증거가 확실히 남는 범죄들 보다는 마약범죄, 조직범죄, 지능범죄, 디지털성범죄 등과 같이 범죄 후에도 증거가 남지 않거나 극히 적은 범죄들이다.

하지만 이런 함정수사는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적법한 수사 방법일까? 이에 관해 대법원(2006도2339 판결 등)은 이렇게 판시한다.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아니한 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하게 해 범죄인을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하다.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해당 범죄의 종류와 성질, 유인자의 지위와 역할, 유인의 경위와 방법, 유인에 따른 피유인자의 반응, 피유인자의 처벌 전력 및 유인행위 자체의 위법성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수사기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인자가 피유인자와의 개인적인 친밀관계를 이용해 피유인자의 동정심이나 감정에 호소하거나, 금전적ㆍ심리적 압박이나 위협 등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하거나, 또는 범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범행에 사용될 금전까지 제공하는 등으로 과도하게 개입함으로써 피유인자로 하여금 범의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지만, 유인자가 수사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피유인자를 상대로 단순히 수차례 반복적으로 범행을 부탁했을 뿐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는 경우는, 설령 그로 인해 피유인자의 범의가 유발됐다 하더라도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어떤 법적 의미가 있을까? 먼저 위법한 함정수사로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위법 수집 증거의 배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검사가 위법한 함정수사에 기해 공소를 제기하면 법원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봐 공소기각판결(형사소송법 327조 2호, 공소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해 무효인 때)을 한다. (대법원2005도1247판결)

정부가 지난 4월경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과 같은 성착취 범죄와 관련해 피의자 검거에서 함정수사 형식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엔(n)번방 사건처럼 방의 폭파와 개설을 반복하며 은밀하게 운영되는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하려면 함정수사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미국 국토안보수사국이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에서 아동 성착취물 25만여 개를 배포한 한국인 손씨를 붙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연방수사관이 아동 성착취물 구매자로 위장해 손씨에게 접근해 가상화폐 지갑에 여러 차례 돈을 입금하고 이를 추적해 손씨의 인터넷 프로토콜(IPㆍ아이피) 주소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적극적인 함정수사를 한 결과이다.

그러나 성폭력처벌특례법이나 아동ㆍ청소년 성보호법 등 특수한 범죄에 관해서는 수사의 필요성 및 효율성을 위해 부득이하게 함정수사를 확대하더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근간인 적법 절차 원칙을 훼손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함정수사의 오남용을 방지할 섬세하고 견고한 방안이 선결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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