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1:01 (금)
아전인수에서 벗어나 보기
아전인수에서 벗어나 보기
  • 경남매일
  • 승인 2020.08.04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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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화
수필가 / 사회복지사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들으며 눈물짓는 이가 있었다. 여러 노래 중에서 오직 그 노래에서만 그랬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 노래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이 있거나 가사나 곡이 그 사람의 감정과 일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에서도 강연자의 말 중에서 어느 특정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하는 이가 있었다. 왜 그 사람은 그 부분에서만 그랬을까. 그 부분이 자신에게 깨우침을 주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같은 책을 읽고 밑줄을 그어도 사람마다 그어진 부분이 다르다. 자신이 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억하고자 하는 부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 포털사이트에 지식을 나누는 곳이 있다. 예전에, 중국 사우나 문화에 관해 묻는 여성이 있어 과거 중국 생활을 경험으로 답을 해주었다. 질문인 즉, 남자친구가 중국 출장을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사우나에 들른다. 중국 사우나는 음란성이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 어떠냐는 것이었다. `중국 사우나는 이상한 곳`이라는 확신을 갖고 `이상한 곳`이라는 말만 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중국 사우나 문화에 관해 얘기해 주고 말미에 그런 식으로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진정으로 남자친구를 사랑한다면 출장에서 맡은 업무를 잘 처리하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사람은 너나없이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려고, 듣고자 하는 것만 들으려고 한다. 책 한 권 안의 내용도, 한 편의 글 내용도, 하물며 한 문장 안에 있는 단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것,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취사 선택하고 그것을 근거로 자기주장을 한다. 정치 여론 조사의 결과를 두고도 여야 각기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고, 특정 부분의 일부 결과만 집중 조명하여 홍보한다. 같은 결과를 두고 서로 반대의 해석을 하기까지 한다.

`아전인수` `견강부회`라는 말이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들인다`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고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억지로 끌어모아 붙인다`라는 뜻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이라는 말이다. 두 단어 모두 사물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현상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각기 다른 모양이 있기에 모든 것을 펼쳐놓고 합리적인 것을 찾아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생겨난 말이리라.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판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일반 시민도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는 경향이 있다. 생각과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도 상대 진영의 말을 들어본 후 합리적이면 수용을 하고 그렇지 못하면 대안을 제시해야 함에도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서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 정치는 양보나 협력인데 자기주장만 하면서 무슨 정치를 한다는 것인지. 철학 용어에 정반합(正反合)이 있다. 헤겔의 변증법을 도식화한 것인데, 기존에 유지되어 오던 정(正)이 있고, 정을 부정하는 새로운 상태인 반(反)이 제시되면 서로의 갈등으로 정과 반이 모두 배제되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합(合)으로 가게 되며 이런 식으로 정반합을 반복하다 보면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오래된 고전적인 이론이라고만 여기지 말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물이나 현상을 이성을 동원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해 놓고선 여러 이유를 붙여 내 생각이 옳다고 합리화한다.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고 합리화하는 존재일까. 특정 집단이 이슈라며 현미경으로 집중 조명한 그것도 사실은 사물의 일부분일 뿐 결코 전체가 아니다. 너무 편협한 생각이나 아집에서 벗어나 상황을 객관화시켜보기, 아전인수에서 벗어나 보기. 이것이 개인, 단체, 정당할 것 없이 요즘 세상 살아가는데 한 번쯤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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