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은 우리 생활 속에서 항상 함께했다
빗은 우리 생활 속에서 항상 함께했다
  • 경남매일
  • 승인 2020.07.20 2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화남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1970년대에 영국 그룹 비틀즈가 대중의 영웅이 되면서 통기타와 남성들의 장발이 유행의 한 부분을 차지했었다. 이때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큰 도끼빗을 뒷주머니에 꽂아줘야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손질해 모양을 잡거나 가지런히 정리할 때 브러시나 빗을 사용한다. 이러한 용도로 쓰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 도구가 빗(梳ㆍcomb)이었다. 빗은 18세기 중반 이후 서양에서 기계로 생산되면서 여러 형태로 만들어졌고, 현대에 와서는 짐승의 털이나 합성수지, 가는 철사 따위로 만들어져 때나 먼지를 쓸어 낼 때 또는 무엇을 바르거나 칠할 때 쓰였던 우리의 솔, 즉 브러시(brush)가 헤어스타일을 꾸미는 데에도 쓰이게 됐다.

빗과 관련된 용어도 다양하다. 잘게 갈라진 낱낱의 살을 `빗살`이라 하고, 헝클어진 머리털을 빗으로 가지런히 다듬는 것을 `빗는다`라 하며, 빗으로 머리털을 다듬는 것을 `빗질`이라 한다. 빗살에 낀 때를 빼고, 가르마를 타는데 쓰는 도구를 `빗치개`라 했으며, 빗 백 개를 `한 쌈`이라 했고, 머리를 손질하는데 쓰는 물건들을 담아두는 도구를 `빗접`이라고 했다.

각 나라별 빗이 사용돼져 왔던 시기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으나, 세계 각처의 고분이나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빗을 만드는 재료에 있어서 동물의 뼈, 뿔, 상아 등이나 나무, 금속 등을 이용해 만들었고, 그 쓰임새도 비슷해 모양 또한 유사한 부분도 많이 관찰되고 있다. 이는 동서양을 떠나서 빗이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생활용품으로써 항상 손 가까이에 두고 사용해 왔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혹은 사회 각 계층의 계급에 따라 빗의 생김새와 쓰임새는 달리해 사용돼져 왔다.

우리나라 빗의 역사는 문헌에 기록된 것과 고분이나 유적지를 통해 발굴된 유물로써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낙랑고분에서는 목재로 만든 빗이 출토됐고,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목재 빗과 바다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대모 빗이 출토된 바 있다. 특히 옛 가야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빗은 화려하게 금세공으로 윤곽을 만들고 내부에 청색 옥을 감입해 꽃모양으로 장식을 한 대모 빗이었는데, 이는 단순하게 머리를 빗는 용도만이 아닌 머리 장식용으로 빗이 사용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빗을 뒷머리에 장신구로 꽂고 다녔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빗을 잃으면 정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했고, 빗을 주는 행위는 허혼(許婚)을 의미했기에 빗을 머리에 꽂는 관습은 차츰 사라졌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빗에다가 주칠, 화각(華角), 조각 등을 베풀어 예쁘게 세공했으며, 부녀자의 애장품으로 귀하게 다루기도 했다.

종래의 빗은 대부분이 대로 만들었으나,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머리를 빗을 때 감촉이 좋아 특히 부유층에서 좋아했던 뿔로 만든 것도 있었다. `흥덕왕 복식금제조`에 의하면 대모, 아(牙), 각(角), 목재의 빗이 계급에 따라 달리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고유의 빗은 크게 나눠 `참빗`과 `얼레빗`으로 나뉜다. 참빗은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빗이고, 얼레빗은 빗살이 굵고 성긴 빗이다. 옛날 여인들은 긴 머리채를 얼레빗으로 대강 빗은 다음 참빗으로 정성을 다해 빗어 내렸고, 곱게 땋아 쪽을 진 다음에는 `면빗`으로 뺨 위나 귀밑에 난 가늘고 고운 머리털을 말하는 살쩍을 빗어 넘겨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단정한 모습을 했다.

뿐만 아니라 빗질은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두피에는 수많은 혈관과 신경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두피를 빗질해주게 되면 두피뿐만 아니라 두피와 연결된 얼굴 피부 역시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 빗질을 통해 머리로의 혈류량이 늘어나 뇌에까지 건강한 자극을 주게 돼 순환이 좋아지면서 두피에 힘이 생기면 그 아래 피부 근육을 단단하게 당겨줘 얼굴에까지 탄력이 생기고 안색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불교에서 머리카락은 애욕의 상징이며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 무명초(無明草)라는 표현을 썼다. 그래서 스님들의 삭발은 할애출가(割愛出家)라고 했다. 애욕을 베어버리고 수도에 전념한다는 표현이다. 조상들은 예로부터 용모(容貌)를 단정히 하고 미(美)를 중시했으며, 예(禮)를 중히 여겨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도록 했다. 애욕과 번뇌라는 불교의 의미가 굳이 아니어도 현대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쪽거울 앞에서 빗으로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어 내리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혹사당하는 눈 건강과 두피건강을 위해 잠시 시간을 내어 빗질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빗질이라는 오늘의 작은 습관 하나가 모두 건강한 내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