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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유의 근원 `건곤감리`
만유의 근원 `건곤감리`
  • 경남매일
  • 승인 2020.07.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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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우리나라 태극기 문양은 우주 만물의 원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국기라고 한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을 상징한다. 가운데 태극 문양은 음과 양을, 건곤감리(乾坤坎離) 사괘(四卦)는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한다. 이는 주역의 음양오행사상과 64괘의 시작 괘인 중천건괘와 중지곤괘, 끝맺음 괘인 수화기제와 화수미제괘로 완성되는 이치를 따랐다.

공자는 십익(十翼) 서괘전(序卦傳)에서 중천건괘와 중진곤괘를 처음 둔 이유를 하늘과 땅이 있고 난 뒤 만물이 생긴다고 했다. 수화기제(水火旣濟)와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끝에 둔 것은 물건을 지님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건너기 때문에 기제괘로써 받고, 물건이 궁할 수 없기 때문에 미제괘로써 받아 마친다고 했다. 따라서 주역의 시작은 하늘과 땅으로 하고, 마침은 물과 불로써 한 것은 우주 만물의 생성소멸의 대원리를 따른 것이다. 건괘와 곤괘는 필자가 본보를 통해 몇 차례 기술했기에 마침 괘인 수화기제와 화수미제괘에 대해 논급해 본다.

주역 64괘의 63번째 괘인 수화기제는 이미 이뤄지고 난 뒤라 정리정돈을 하고 마무리를 해야 할 시기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현 상태를 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시기이다. 따라서 기제는 더 이상 어떻게 무엇을 더 욕심부려 일을 꾸미지 않아도 좋다. 과유불급이라 비룡재천(飛龍在天)후의 항룡유회(亢龍有悔)를 생각할 때이다. 64괘의 괘상 중에서 음과 양이 짝이 맞아 여섯 효가 부정위(不正位)없이 중정(中正)해 자신의 자리를 바로 지키고 있다. 서로 떨어질 수도 없고 서로 섞여서도 안 되는 물과 불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상호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기제는 이미 이뤄진 상태로 장차 미제가 찾아 올 것이라는 예측을 내포하고 있다.

백운 심대윤은 <주역상의점법>에서 `기제괘와 미제괘는 마침과 다시 시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물과 불이 괘를 이뤄 음양으로 변하고 체용(體用)이 반복해서 만사만물의 이름과 훼손의 시종(始終)이 되는 근본으로 선천과 후천이 된다. 기제괘에서 효의 자리는 강한 자리(양)에 있으면서 힘을 다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부드러운 자리(음)에서 힘을 다하지 않고 일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고 했다. 따라서 기제괘는 초길종란(初吉終亂)이 찾아올 때이니 궁색해지지 않도록 예방을 하라는 경계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서경>에는 `작은 행동이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큰 덕에 누를 끼칠 것`이라고 했으며 <시경>에는 `처음에 두지 않는 이는 없지만 끝맺음을 두는 이는 드물다`고 했다.

이는 공자가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내 나이 일흔에 마음이 바라는 대로 쫓아도 됐으나 내가 할 바는 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칠십이 종심소욕 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를 떠올리게 한다. 물욕정심으로 마음을 비우니 어떤 일을 하든지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정치구단이라는 노정객이 정부의 요직에 발탁됐다.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하마평이다. 그분의 연세로 볼 때 공자가 말한 `종심소욕 불유구`의 경지에 이른 분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화수미제는 서두르면 목적지 한치 앞에서도 꼬리를 내리는 수모를 당한다. 노련한 고수처럼 물을 건너기 전에 얼음을 밟아보고 신중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주역 64괘의 끝 괘를 미제로 한 것은 역의 끝은 기제의 완성에서도 끝맺지 않고 다시변화를 시작한다는 경계와 희망을 의미한다. 다산 정약용은 <주역사주>에서 `미제는 여섯 효가 모두 정위를 벗어나 부당의 자리에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전부가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만난신고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대자연은 완전한 흉도 완전한 길도 없다는 주역의 대원리를 말한다.

주역 수화기제와 화수미제괘가 던지는 메시지는 오늘날 한국이 처한 복잡 미묘한 대내외적 상황의 슬기로운 대처방안에 대한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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