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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학자들의 주역론
조선유학자들의 주역론
  • 경남매일
  • 승인 2020.07.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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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이씨조선시대는 성리학이 통치이념의 근본이었다. 선비들과 벼슬아치들은 성리학의 원천인 사서육경을 평생 공부했다. 그중 육경의 으뜸이라는 주역공부에 쏟은 시간과 노력은 엄청났다. 대과문과시험과목이기도 했지만 선비가 주역을 논변하지 못하면 식자층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거나 사마시에 합격한 후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한 선비들도 주역공부에 수십 년간 전념했다. 최근 공명(孔孟)과 노장(老莊)에 통달한 대유학자가 20년간 주역을 연구했지만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주역미생인 나는 할 말을 잊었지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를 위안삼아 종일근근 역서를 펼친다.

 조선시대 학문한 선비치고 주역을 논변하지 않은 자가 드물었다. 성리학자, 실학자, 불승까지 논급한 주역해석은 후학들에게 주역공부의 좋은 길잡이가 된다. 그중 주역의 핵심인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 대한 선학들의 해석을 살펴보자. 백운 심 대윤은 `건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모두 가을이 되기 위한 것이고, 원, 형, 정은 이가되기 위한 것이니 온갖 사물은 가을에서 이뤄지고, 온갖 일은 이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서해 유성룡은 `원형이정을 건의 사덕(四德)으로 본 것은 공자의 설이다. 역의 도는 넓고 커 갖추어지고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상(象)은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이치는 실제로 상에 갖추어져 있다. 괘사는 상을 가지고 이치를 밝히는 것이니 사람들은 이것을 체득하여 일에 시행한다면 길흉의 길에서 혼미하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위암 김상악은 `건은 굳세고 양으로 6획 모두 홀수면서 순수한 양이니 천(天)이라 하지 않고 건(健)이라 한다. 원은 크고 형은 통하며 이는 마땅하고 정은 바르고 견고하다. 원으로서 만물을 낳고 형으로서 만물을 기르고 이로서 만물을 보관한다. 원형은 양에 속하여 길하고 흉은 없으며 이정은 음으로 길흉은 반반이다. 오직 원만이 크지 않음이 없이 반드시 원길(元吉)로 일컬으니 이 때문에 사덕의 으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이처럼 64괘의 으뜸 괘인 중천건괘에 대한 해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자의 십익 문언전과 소상전 해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 괘인 곤괘(坤卦)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자. 지욱선사는 `곤이란 순으로 음이 되고 지도로 보면 유함이 굳고, 이도로 보면 어질며, 성리로 보면 정숙함이 되며, 수도로 보면 그침이 되고, 기계로 보면 실음이 되며, 장부로 보면 배가 되고, 집으로 보면 처가 되며, 나라로 보면 신하가 되니 그 소행에 거역함이 없다`고 했다. 서양 역학자 후앙(Huang)은 `곤괘 초효의 메시지는 작은 단서로부터 다가오는 정치적 위기를 미리 알아 혁명을 준비하는 것으로 이는 하극상을 예견한다`고 했다. 따라서 곤괘의 효변에 따른 점단은 길조보다 흉조가 많다. 건괘는 성인의 학문을 말하였고 곤괘는 현인의 학문을 말했는데 이는 정자가 말한 `배우는 자는 굳이 먼 데서 구할 필요가 없고 가까이 자기 몸에서 취하되 다만 사람의 도리를 밝혀 존경할 뿐이다`는 말에서 그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주역 곤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다는 함장(含章)의 조건이며, 그 체현은 바로 만물을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했다. 이처럼 주역 건괘와 곤괘에 대한 조선선비들의 해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조때 대과문과급제자 33명의 최종순위결정시험인 전시(殿試)의 주역 책문(策問)을 상고해 본다.

 `주역은 무엇으로부터 도가 갖추어졌고, 무엇으로부터 법이 이루어졌으며 사성은 천명으로 인한 사람들인데 무슨 까닭으로 같지 않으며, 광대하게 구비됨이 없이 시경, 서경과 더불어 같고 같지 않은가...중략. 거북 껍데기를 불태웠는데도 이루고 황상을 했는데도 패한 것은 어떤 자를 부렸기에 그랬으며 그 이치는 있는가. 무슨 이치인가. 그것을 다 진술하라`(정영종, 생생주역). 오늘날 국가고시에 이런 문제가 출제된다면 정답을 쓸 인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인 그랑제꼴의 철학문제가 이런 식으로 출제된다니 우리나라 대입제도가 제대로 된 것인지 의문스럽다. 고도의 사고력과 지도자로서의 자질, 학식의 깊이를 종합평가하는 논술시험이 책문이다. 그래서 조선의 대과문과시험은 입신양명의 관문이자 뛰어난 인재발탁의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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