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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시인의 브로맨스
대통령과 시인의 브로맨스
  • 경남매일
  • 승인 2020.06.2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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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존 F.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나이(44세)로 제35대 미합중국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의 개척정신을 새롭게 하자는 ‘뉴프론티어(New Frontier)’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어 닉슨을 물리쳤다. 그가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설한 취임사는 명연설문으로 유명하다.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 달라.”고 했다. 그 당시 미국은 경제침체, 인종문제, 소련의 우주개발 등으로 의기소침해 있을 때였다. 뉴프로티어의 기수로 등장한 젊고 자신감 넘치는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의 쿠바 핵미사일 위기를 해결해 일약 미국인의 희망이자 우상으로 떠올랐다. 1961년 1월 20일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귀빈으로 초청된 노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자작시 ‘아낌없는 헌신’을 낭송했다. 프로스트는 미국인들이 사랑한 계관적 성향의 자연주의 시인으로서 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노시인과 미국의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한 케네디와의 브로멘스는 대통령 취임식 헌시낭송부터 프로스트가 사망(1963년 1월)한 그해 10월까지 이어진다. 케네디는 고인이 생전에 영문학을 강의했던 메사추세츠주 애머스트 칼리지에서 시인 프로스트를 위한 추모연설을 했는데 이 추모사 또한 명연설로 길이 회자되고 있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으로 몰고 갈 때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 줍니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영역을 좁힐 때 인간존재의 풍요와 다양성을 일깨워 줍니다. 권력이 부패할 때 시(詩)는 정화시켜 줍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예술가는 세상과 사랑싸움을 합니다. 예술가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쫓다 보면 시대의 조류를 거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인기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예술가는 진실에 대한 자신의 비전에 충실함으로써 나라에 가장 큰 봉사를 합니다. 예술가의 임무를 경멸하는 나라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고용된 사람의 운명을 맞이합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볼 것도 없고 희망을 가지고 바라볼 것도 없는 운명이 예술가의 운명입니다.”(약술)

 이 추모연설 후 한 달 뒤 케네디 대통령은 오스왈드에게 암살당했다. 댈러스의 비극으로 뉴프론티어의 희망은 사라지고 미합중국의 영광은 빛을 잃은 채 저급한 양키즘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로써 케네디와 시인 프로스트와의 브로맨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얼핏 생각하면 시인과 대통령은 멀게 느껴지는 사이 같지만 케네디가 추모사에서 언급했듯이 권력이 부패할 때 그 부패한 권력을 정화시켜주는 것은 예술가의 역할이다. 문학과 예술은 학정으로 고통 받는 약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권력의 힘이 문학과 예술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독재시대에 사는 국민들의 삶은 피폐했으며 표현의 자유가 봉쇄된 폭력의 시대였다. 알베르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이 말은 독일 철학자 데카르트의 코키토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빗대어 한 말이다. 그는 반항하는 인간을 실존적 주체로 인식하고, 희구하는 정신과 그를 좌절시키는 세계의 단절로 정의되는 부조리를 강하게 비판하며 저항했다. 부패에 대한 저항이 사라진 시대의 예술은 허접한 광대놀음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예술작품과 예술인에 대한 권력의 통제와 검열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민주화투쟁의 대가로 창작의 자유를 쟁취했지만 예술인으로서의 본령을 망각한 채 권력에 기생하려는 기회주의자들로 넘쳐난다. 유명문인과 예술가들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어용학자들이 곡학아세하듯 곡예아세(曲藝阿世)하는 행태에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 어디 그뿐이랴. 영상매체에서 인기를 누리던 예술인들이 어설픈 정치꾼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 진정한 의미의 문화예술인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권력이 부패할 때 세상을 정화시키는 시인의 역할을 존중하고 찬미한 케네디 대통령과 시인 프로스트의 브로맨스가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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