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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라진 `지로` 문화
한국에서 사라진 `지로` 문화
  • 경남매일
  • 승인 2020.06.2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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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일본에 가면 방안이나 마루 다다미(たたみ) 중간에 만든 `노(爐)`를 볼 수가 있다. 이를 `いろり(이로리)`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손님이 오면 이 `いろり(이로리)`에 차를 끓여 내기도하고 나베를 끓이기도 하고 생선 등을 꼬지에 꽂아 구워 먹기도 한다. 이 `いろり(이로리)`는 우리나라의 제주도에서도 볼 수 있다.

제주도 전통가옥에 방안이나 대청에 봉당(封堂)을 파서 `부섭` 또는 `봉덕`으로 불리는 붙박이 화로가 설치된 경우가 있지만 내륙의 어떤 가옥에도 일본의 `いろり(이로리)`나 제주의 `봉덕`이 설치된 곳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조선 전기의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시(詩)에 `지로(地爐)`가 나온다.

山房淸초夜何長(산방청초야하장) 산방은 맑고 쓸쓸한데 밤은 어이 긴가. 閑剔燈花臥士床(한척등화와사상) 한가로이 등불 돋우며 흙마루에 누워 있네. 賴有地爐偏饒我(뢰유지로편요아) 의지하는 건 땅 화로라 편벽되어 나를 돕고 客來時復煮茶湯(객래시복자다탕) 객이 올 땐 다시금 차를 달이네.

이 `지로(地爐)`가 일본의 `いろり(이로리)`나 제주의 `봉덕`과 같이 방 바닥을 파고 그 속에 불을 지펴 방안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지로(地爐)`는 등잔의 역할도 했던 것 같다.

地爐旋撥一點星(지로선발일점성) 지로에 별똥만한 불을 꺼내어, 료以十枚當囊螢(료이십매당낭형) 열 가지에 붙여서 반딧불 대신 照之不減蘭膏明(조지불감란고명) 비쳐보니 촛불보다 못하지 않아 千行萬點료熒熒(천행만점료형형) 만 줄 천 점이 알른알른 다 뵈누나.

한편, 조선 중기의 문신 최립(崔립: 1539~1612)의 시문집인 `간이집(簡易集)`에 나오는 시(詩 ) `지로(地爐)`에는 그 형태가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爲爐因地坎然幽(위로인지감연유) 움푹 패인 땅속에다 멋진 화로를 만들다니 巧冶無功定覺羞(교치무공정각수) 대장장이 할 일 없어 부끄러워 어떡하나 自有典形安鼎조(자유전형안정조) 틀도 본래 번듯해서 솥과 냄비도 올려놓고 能當焦爛受薪추(능당초란수신추) 불을 때도 이마 그을릴 걱정이 전혀 없소 冬親夏遠情雖異(동친하원정수이) 겨울에 친하고 여름에 소원한 차이는 있다 해도 暮槪朝燃用不休(모개조연용불휴) 저녁에 덮었다 아침에 불 살려 끝도 없이 이용하네 近侍何人能撥火(근시하인능발화) 이 불씨를 근시 중에 누가 활활 일으켜서 却吹餘煖遍蒼丘(각취여난편창구) 온 누리에 따스한 바람 감돌게 해 주실꼬.

이 시(詩)를 보면 땅을 파서 화로를 만들어 솥이나 냄비를 얹어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 등잔이나 난방용 등 다목적으로 활용했다고 할 것이다.

조선 중기 문인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옥담유고(玉潭遺稿)`, `夜歸(야귀) 밤에 돌아가며`에 밤을 구우며 밤늦도록 기다리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를 썼다.

想得家中兒女在(상득가중아여재) 생각건대 저 사람 집안에 자녀들이 있어 地爐燒栗坐深更(지로소율좌심경) 화로에 밤을 구우며 밤늦도록 기다리겠지.

조선 중기까지 조선의 전통가옥에 있던 `지로(地爐)`는 사실 온돌(溫突) 문화에서는 큰 필요성이 없었을 것이며, 오히려 화로(火爐)가 더 실용성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같이 다다미(たたみ) 생활하는 주거문화에서는 `いろり(이로리)`가 꽤 실용적이었을 것으로 지금까지 전통이 이어져 온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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