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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불평등론과 이데올로기
피케티의 불평등론과 이데올로기
  • 경남매일
  • 승인 2020.06.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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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최근 프랑스의 사회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전작 <21세기 자본>에 이어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출간했다.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쓴 이번 저작은 전작의 서술방식을 그대로 답습했지만 역자가 달라서 인지 문맥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전작이 일반대중의 레벨을 고려한 번역이었다면 이번 저작은 대학원생을 상대로 한 강연을 연상케 한다. 800쪽의 전작에 비해 1천300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경제학 서적을 끈기 있게 완독할 독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부피 큰 책 읽기에 이골이 난 필자지만 단숨에 독파하기엔 힘이 부쳤다. 전작 <21세기 자본>이 전 세계 사회경제학계에 던진 메시지는 무척 강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경제학자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반면 한국의 불평등경제학 권위자였던 모 교수는 아카데미를 벗어나 폴리페서로 변신했지만 실물경제와는 거리가 먼 공리공론자로 추락해 불평등경제학자로서의 권위와 명성을 잃고 말았다.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와의 관계를 역사적 사건으로 규명하는데 힘쓴 것이 전작과 다소 다른 점이지만 그 내용은 시간적 흐름(2013년→2020년)에 따라 변화된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현상을 보완해 반영했다. 피케티 저작의 일관된 흐름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빈부격차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그는 이번 저서에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차원을 지니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집중 조명하고 있다. ‘정치체계와 소유체계문제가 불가분의 관계로 부단히 연결되어 있다. 삼원사회와 노예제 사회에서 현대 포스트 시민사회와 하이퍼 민주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소유자사회가 야기한 불평등 및 정체성 위기에 대한 반발로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했다.’고 했다. 따라서 불평등은 경제적인 것도 기술공학적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역사학자나 사회경제학자는 물론 사회엘리트계층인 정치인 경제인 지식인들이 지난 시대에 존재해온 불평등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당연시하려는 태도에 반기를 든다. 그는 역사적 경험으로 비춰볼 때 불평등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으며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단절과정을 통해 축소되고 변동되어 왔으며, 이는 인류 진보라는 관념의 현실화로 규명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보통선거, 무상의무교육, 보편적 의료보험제도, 누진세제 등을 통해 불평등의 해소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미래에도 그럴 개연성은 다분하다. 따라서 현재 불평등한 제도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지속적으로 변형재창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이번 집필프로젝트에 참여한 세계 80개국 100명의 연구자들이 분석한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역사에서의 불평등주의 체계, 노예제 사회와 식민사회, 20세기의 거대한 전환, 정치적 갈등차원들의 재사유 등으로 분석해 불평등의 역사적 과제와 문제해결을 위한 사상적 실천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핵심주제는 정의로운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경제조건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대안 제시이다. 피케티는 지금 가시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민족주의와 정체성주의의 경직화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는 중국, 유럽 및 미국 등지에서 발흥하고 있는 신고립주의가 증명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처에서 보았듯이 서구의 쇠락이 초래한 탈 서양화가 지닌 한계극복은 사회과학의 시민적 정치적 역할을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살아온 경험의 논증에 근거한 광범위한 집단적인 숙의를 통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사회가 처한 정치, 경제, 사회현상에서 노정되는 이데올로기의 극한대립과 빈부격차의 심화는 범세계적인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데올로기는 단지 정치사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제 사회현상과 밀접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불평등해소의 필요충분조건인 자본적 평등이 수반되어야만 비로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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