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은 많으나 쓸 만한 그릇이 없다
도공은 많으나 쓸 만한 그릇이 없다
  • 경남매일
  • 승인 2020.06.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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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식생활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담을 그릇이다. 꼬챙이와 칼만 있으면 식생활이 가능했던 서양의 구이(?)문화는 조리도구로 수천 년 전 두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강렬한 태양과 물이라는 자연의 은혜를 입어 BC6000경부터 토기가 제조됐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자기문화가 발달한 것은 16세기 후반 포르투칼 에스파냐의 극동진출을 통한 교역과 17세기 초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다양한 동양문물을 유럽에 운반하면서 동양에서 서양으로 도자기문화를 유입해 유럽의 지배계급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꽃을 피웠다. 이후 네델란드는 1709년 마이센에 왕립자기제작소를 설립했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브르요는 1757년 루이 15세의 총비(寵妃)로서 도자기 애호가였던 퐁파두르 부인이 파리 근교에 있던 반센요를 세브르에 이전시켜, 프랑스왕립자기제작소로서 로코코 취향 최고급 자기를 번조했다.

영국의 자기는 프랑스 자기와 매우 다르며 첼시요나 더비요에서는 프랑스풍의 연질자기가 변조됐지만 보우요는 동물의 골회(骨灰)를 첨가한 이른바 골회자기(骨灰磁器)가 발명됐다. 이렇듯 도자기 문화는 찌(蒸)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동양문화에서 시작했다. 비록 자기문화가 동양에서 시작됐지만 서양의 자기문화 발전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 있다.

우리는 선사시대 즉 신석기 시대부터 가야, 삼국시대 토기, 고려청자와 이조백자 등으로 이어지는 접시, 대접, 병(甁), 시루 등의 화려한 예술적 가치와 문화재적 가치 이전에 기능면에서도 놀라울 정도이다. 이러한 작품들이 단순히 논리적 학문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니라 바로 그 시대 삶과 장인의 혼이 담겨져 있는 걸작품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도자기를 하는 분들은 많은데, 좋은 그릇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비싼 그릇은 많은데, 그릇으로서 제 기능을 하는 가치 있는 그릇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도자기를 한다는 분들의 작품 대부분이 찻그릇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이름값 한다고 도자기 한 점 값이 무지할 정도로 비싸다. 물론 그들의 예술적 가치와 노력을 간과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자신의 작품이 도기(陶器)인지 도예(陶藝)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다분히 작품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고 언감생심(焉敢生心)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는 더욱 없다.

어차피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도예도 도기(陶器)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하면서 만들어진다면 명품 중에 명품이 될 것이다.

그릇은 모름지기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사람이 먹는 음식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그렇다면 그릇은 음식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그릇으로서 생명력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음식을 담지 못하는 그릇이라면 감히 도자기라는 이름을 붙이기보다 공예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도자기를 하는 분들이 그릇을 만들어 놓고 어떤 음식이든 담아도 좋다는 식이라면 고객을 기만하는 것이다. 최소한 도공이라면 내가 어떤 음식을 위해 이 그릇을 만들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그릇을 만들 때, 냉국이냐 더운 국이냐에 따라 그릇의 두께 구(口)의 넓고 좁음 등을 달리해야 하며, 입을 대고 마실 그릇이냐 음식을 떠먹는 그릇이냐에 따라 입술이 닿는 면을 달리 하고, 떠먹는 그릇이라면 수저질 할 때 그릇 구의 넓이 바닥의 깊이로 수저 각도가 맞아야 음식을 먹을 때 그릇 바닥 긁는 소리가 안 난다. 그리고 음식을 끓이는 뚝배기 같은 그릇은 내열성(耐熱性)과 열의 보존성이 있어야 한다.

한편, 그릇은 발효가 필요한 김치, 된장, 간장 등은 당연히 그릇에 숨구멍이 있어야 하지만 일시보관을 요하는 밥은 유기그릇과 같은 숨구멍이 없는 그릇에 보관해야 밥이 변질되지도 않고 맛이 있다.

그릇은 음식의 색, 모양, 향, 맛, 온도, 계절, 식 행위, 문화를 고려해 차별화 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아직도 그런 도공을 만나 본적이 없다. 우선 도공들이 식생활문화에 대한 기본적 공부도 안됐을 뿐만 아니라 손재주에만 능한 것이 아쉽다.

물론 도기에서 예술적 가치를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좀 더 그릇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도예를 하는 분들은 조각이나 조형을 하는 분들처럼 기능적인 것 보다 예술적인 면을 더 중요시하게 된다. 그러나 도기는 그릇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 해도 그것은 이미 도기가 아니다. 뚝배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쳐 연구해오던 선인들의 혼에 장맛이 우러나듯 오늘날 그런 도공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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