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토대 다지고 지역경제ㆍ기업 선도하며 미래로 순항
제조업 토대 다지고 지역경제ㆍ기업 선도하며 미래로 순항
  • 강보금 기자
  • 승인 2020.05.27 2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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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상공회의소 30일 창립 120주년
마산항 개항과 함께 막 오른 창원상의 역사
해방 이후 법정단체로 출범
창원시 승격과 새로운 출발ㆍ통합 상의 역할
코로나19에 신용보증 확대ㆍRG 완화 촉구
오는 30일 창립 120주년을 맞는 창원상공회의소의 전경.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마산상공회의소 제2대의원부 단체 사진.
1980년 창원상공회의소 창립 기념회 사진.
1981년 마산상공회의소 김해시지부 개소식 장면.
2010년 통합 창원시 출범과 함께 통합된 창원상의의 창립 30주년 기념식 사진.

제조산업의 메카 창원의 경제활동 전반을 이끌어 온 종합경제단체 창원상공회의소가 오는 30일 창립 120주년을 맞는다. 현재 전국에 73개 상공회의소가 설치 및 운영 중이다. 창원상공회의소는 이 중에서도 특히 무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창원시의 탄생부터 모든 성장과정을 함께 이룩한 지역의 뼈와 살이라 볼 수 있다. 우선, 대한상공회의소는 1867년 개항 이후 개항지를 중심으로 외국상품과 서구식 상업방식이 도입되면서 상공회의소 제도가 도입되자 이에 대항해 민족계 상인조직으로서 속속 설립된 것이 그 효시이다. 항만을 중심으로 설립된 역사적 배경으로 창원상공회의소의 막은 마산항의 개항과 함께 열렸다고 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창원상공회의소의 역사를 고스란히 훑고 흐르는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120년의 세월을 되짚어 보고 바다와 만나 방대한 세계로 뻗어나갈 앞으로의 항해를 살펴보기로 했다.

 ◇마산항 개항과 마산상호회 탄생

1899년 마산항이 개항되자 몰려드는 식민자본의 위협으로부터 민족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1900년 5월 마산포 객주를 중심으로 결성한 ‘마산상호회(馬山商護會)’가 오늘날 창원상공회의소를 있게 한 모태이다.

마산상호회는 1902년 일본인들의 야욕으로 빚어진 구강장(舊江場)의 탈취에 대응해 마산포 주민들의 생활권을 지켜 주었고, 1906년에는 일본인의 구마산포 매립사업 추진에 크게 반발해 회원일동이 합심, 거액을 마련한 후 항민공동매축청원서(港民共動埋築請願書)를 요로에 제출하는 등 지역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이 마산상호회는 1908년 마산포주민의 자위적 대변기관인 마산민의소(馬山民議所) 탄생의 산파역이 됐고 그해 6월 30일 마산조선인상업회의소로 개편해 근대적 상업회의소로 출발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가중되는 일제의 방해와 압박에 견디지 못해 1914년 비분 속에 해산됐고, 일제 강점기 시기는 일본인의 주도권 아래 상공회의소의 설립과 해산이 반복됐다.

 ◇법정단체 마산ㆍ진해상공회의소 출범

마침내 1945년 광복을 맞이한 마산과 진해의 상공인들은 나라를 다시 찾은 기쁨 속에 상공회의소를 새로이 조직하고 일본인들이 철수하고 난 뒤의 지역상공업계 정비에 힘을 기울였다. 그 후 상공회의소법이 제정 공포돼 1954년 마산과 진해 상공회의소가 각각 제1대 의원선거를 실시해 법정단체 상공회의소가 출범한다.

 ◇창원시 승격과 함께 새롭게 탄생

1973년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이 공표되고 이듬해 창원지역이 산업기지 개발지역으로 확정고시되면서 전형적인 농촌 창원에 한국 최대의 중화학공업단지 조성사업이 시작된다. 더불어 하천과 전답들이 공장용지로 바뀌고 공업도시의 면모를 띄게 되면서 행정구역 단위도 변화해 1976년 9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 출장소 관할이 됐다가 1980년 4월 1일 창원시로 승격된다. 이에 상공회의소 창설 필요성이 제기되자 1980년 4월 창립총회를 실시해 창원상공회의소를 출범시켰다.

 ◇시대와 맞물려 변화해 온 역할

한국전쟁 직후인 1951년 국내 생산액은 전쟁직전인 1949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창원지역은 이러한 전화의 피해가 적은 지역에 속했다. 더불어 과거 일본자본에 의해 구축됐던 방직업과 주조업, 광공업 등의 생산기반이 갖춰져 있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전후 복구가 이뤄졌다.

1950년대 이뤄진 지역산업의 태동과 1960년대와 197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발맞춘 도약기를 거치면서 상공회의소의 역할도 크게 확대됐다.

당시 창원지역에는 법정단체인 옛 마산상공회의소와 옛 진해상공회의소가 설립됐으며, 이들의 주된 활동은 전후 기간산업의 유치와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집중됐다. 당시 지역의 중심산업이었던 방직업과 주조업 등에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 마산화력발전소 설치 운동(1954)을 시작으로 수출공업단지 개발 추진(1965), 진해 전매서 설치(1966), 항만시설 개선(1969), 구마고속도로 건설(1970), 공장새마을운동 전개(1974), 지역 내 터널 및 부두 확장(1976) 등 산업인프라 구축에 힘썼다. 더불어 경남도청 유치 운동(1963), 지역대학 설립 추진(1968), 경남은행 설립 추진(1968) 등 공업단지를 지원하는 도시의 기능 확대에도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

1980년대 창원산업은 창원국가산업단지, 마산자유무역지역을 중심으로 이른바 3저(유가, 금리, 달러) 효과의 수혜를 입으며 수출과 설비투자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이 시기 설립된 옛 창원상공회의소는 기존의 상공회의소 업무와 더불어 창원세관 승격(1985), 창원대학교 종합대학 승격(1990), 경남무역회관 건립(1991), 한국수출입은행 창원지점 설치(1992), 재료연구소 설치(1994), 경남지방병무청 승격(1994) 등 기업지원 기관 유치와 승격에 힘썼다.

1990년대 국내 산업의 주된 이슈는 노사문제 부각이었다. 성장 일변도 정책에서 보다 선진화된 노사문화의 진척이 시대 요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창원지역은 산업 규모의 팽창으로 외부로부터 유입된 노동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 시기 마산ㆍ창원ㆍ진해 상공회의소는 지역 노동자들의 애향심과 지역 공동체의식 함양을 위해 공단문화 사업에 집중했다. 기업 임직원들의 취미활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시상과 홍보를 통해 참여를 유도하면서 산업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하는데 진력했다.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기를 맞은 2000년대 국내 산업의 화두는 전 산업의 디지털화를 바탕으로 한 지식기반산업으로의 전환이었다. 상공회의소 사업도 이에 편승해 전자상거래를 비롯한 e-비즈니스 지원사업과 특허정보지원 등 사업을 새로이 시행했다. 특히 FTA활용지원, 청년인턴지원 등 사업의 확대 및 전문화에도 진력하고 있다. 또 기업 임직원의 역량 강화를 위해 실무중심의 총무ㆍ노무ㆍ인사ㆍ홍보ㆍIR 협의회와 경남경제포럼, 마산21포럼 등 CEO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통합 창원시와 통합 창원창의

2010년 마산ㆍ창원ㆍ진해시가 국내 최초로 자율통합함에 따라 2010년 4월 5일 법률 제10229호로 일부 개정된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이듬해인 2011년 3개 지역의 상공회의소가 함께 ‘통합 창원상공회의소’를 설립한다. 설립 직후 3개 지역의 균형발전과 대ㆍ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통해 화합과 소통의 장을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각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지역별로 가진 고유의 색을 하나로 모아 시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분과위원회 활동을 활성화하기도 했다.

또한 광역자치단체 상공회의소 규모에 걸맞은 예산과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조사연구, 회원지원, 지역공헌사업 등을 통해 종합 경제단체로서의 위상을 높여 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항해

창원상공회의소는 선배 상공인들의 땀과 열정으로 일구어낸 120년의 장구한 역사 위에 화합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상의활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지역과 기업, 대ㆍ중소기업의 상생발전을 창원상의 핵심가치로 여기겠다는 의미다. 창원상공회의소 1층에 마련하는 120년 역사전시관에는 이러한 의미를 담아, ‘공감(共感)’, ‘공유(共有)’, ‘공생(共生)’의 세 단어를 미래 키워드로 꼽았다.

‘공감’은 낮은 문턱으로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높은 목소리로 기업권익을 지키겠다는 뜻을, ‘공유’는 4차산업혁명시대, 비즈니스 플랫폼을 통해 성공요인을 나누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공생’은 이러한 가치를 기업과 지역이 함께 나누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음쇠 역할에 매진하겠다는 의미다.

단기적으로 지역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환경 개선과 인프라 구축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지역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가 발생하면 이를 파악해 알리고, 관련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이 상공회의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지난해 8건의 대정부 건의활동을 펼쳤고, 그 중 △산업단지 내 취득세 추가 경감, △한국수출입은행 창원지점 존치 등 5건이 정책에 반영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불거진 일본수출규제 이슈와 관련해 지역기업의 어려움을 정부와 관계기관에 발 빠르게 전달하는 한편, 기업의 대응방안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올해는 기업 경쟁력을 위협하는 대내외 요인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업인들이 기가 살아날 수 있도록 기업의 대변자 역할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연초 △방위사업청 창원 원가사무소 존치 △코로나19로 인한 생산차질 기업의 선제적 특별연장근로 인가 등을 이끌어낸 것도 그 성과 중 하나다.

특히 창원상공회의소는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신규 산업 유치 △제2신항 개발에 따른 지역 제조업의 활용과 이에 따른 부가가치 극대화 방안 마련 △기업 비즈니스 및 물류 편의를 위한 광역 철도망 확충 노력 △재료연구원 전기연구원 등을 활용한 지역 산업의 연구개발 중심 성장 유도 △방위산업의 수출 활성화 방안 마련 등을 중점과제로 삼고 있다.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은 “창원상공회의소의 지난 120년 역사는 지역산업의 태동과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며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지만 지역 기업과 경제 활성화를 위하는 상공회의소의 목표는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상공회의소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한 회장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경영이 위축되면서 회원 기업들이 어렵지만, 어떻게든지 버텨내겠다”며 “코로나19로 일시적인 자금 부족을 겪는 중소기업을 위해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 등이 신용보증을 확대하고 특히 STX조선 등 지역 중소 조선소들이 금융권으로부터 선수금 환급보증(RG)을 제때 발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 RG발급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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