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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봄이다
너는 나의 봄이다
  • 경남매일
  • 승인 2020.05.08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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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그녀는 볼링핀을 세워놓고 둥그런 고리를 던져 끼워넣는 놀이 중이다.

몸 우측이 편마비돼 팔, 다리 사용이 불편한 선혜 씨, 고리를 던지는 실력이 엉망이다. 수십여 개 고리를 던지고 있지만 골인은 고사하고 핀 주변 사방으로 흩어질 뿐이다. 하은이는 기어다니듯 하며 바닥에 떨어진 고리를 주워 거두고 있다.

그 사이 볼링핀에 고리 한 개가 끼워졌다. 엄마의 환호성에 놀란 딸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손뼉을 치며 펄쩍펄쩍 뛰면서 지면을 차고 올랐다.

반신(半身) 마비된 선혜 씨 손은 심하게 흔들렸고 뇌와 팔로 연결된 운동신경이 차단된 손으로 고리를 던지는 눈물겨운 노력은 시청자 가슴을 아리게 했다. 자기 일인 듯 기뻐하는 딸의 반응과 달리 선혜 씨는 거짓말을 한 아이가 엄마에게 들킨 듯 불안한 표정이다. 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멀쩡한 왼쪽 손을 사용한 때문이었다. 엄마를 운동시키기 위해 땀으로 범벅된 딸에게 하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어릿광을 부릴 철부지 하은이의 엄마에 대한 마음과 그런 딸을 보듬어 주기에도 불편한 육체 감옥에 갇힌 엄마의 사랑 나눔 교감은 마음 속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선혜 씨는 다시 도전 하겠다고 했다. 딸에게 거짓이 아닌 진짜 기쁨을 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불편한 오른쪽 손으로 시도했다. 결과는 엉망이었지만 하은이는 “엄마, 한번 더”를 외치며 쉼 없는 격려를 보낸다. 힘빠진 다리는 몸을 지탱하기에도 벅찬듯 부들거리며 떨려왔지만 선혜 씨는 고리던지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순간 고목나무처럼 뻣뻣하던 몸이 볼링핀을 향해 앞으로 숙여졌다. 정상인이 던지는 자세가 됐다. 떨리듯 흔들리는 선혜 씨 손을 떠난 고리가 볼링핀에 끼워졌다. 선혜 씨 입에서 돌고래 고주파 환호가 발사됐다. “들어갔다.” 부정확한 발음의 외마디 함성은 엄마와 딸을 한 몸으로 만들었다. 딸, 하은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거짓으로 성공시킨 것과 사뭇 다른 자신감이 선혜 씨 마음 속에서 솟구쳤다.

고리를 끼워 넣겠다는 집념은 딸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녀의 집념은 정신을 집중하게 했고 몸의 변화를 이끌었다. 성공했으니 집으로 돌아가자는 하은이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마음 속으로 선혜 씨의 도전을 응원했다. 어린 하은이는 엄마의 재활 의지를 불타게 만드는 커다란 산 같은 존재였다.

이혼의 충격으로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던 선혜 씨가 계단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인해 다발성 뇌출혈이 일어나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됐고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친정엄마는 당신의 삶을 온전히 딸의 회복에 바쳤다. 그녀가 한 달 뒤 의식을 되찾았지만 기억상실, 언어장애, 신체 편마비 장애가 나타났다. 다시 살게만 해달라는 간절한 희망이 절망으로 내몰렸지만 어머니는 강했다. 말, 기억, 신체적 능력이 갓난아기 수준으로 돌아간 30대 중반의 딸을 어머니는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의식이 없는 딸의 온몸을 주무르고 감각을 되찾기 위해 멍이 들도록 꼬집었다. 맨발로 자갈마당을 걷게 하고 통증으로 울부짖는 딸을 보며 엄마도 맨발로 걸으며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휠체어에서 지팡이로, 지팡이를 버리고 혼자 걷기에 성공한 선혜 씨의 새로운 삶은 그녀 곁을 지켜준 숭고한 가족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선행된 것은 다시 일어서겠다는 본인의 회복에 대한 의지였다. 친정엄마의 눈물겨운 노력, 사랑스러운 딸, 하은이가 선혜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은이는 엄마에게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고 투정을 부렸다. 선혜 씨는 예쁜 딸을 위해 용기를 낸다. 떨리는 손으로 어묵을 써는 불안한 칼질, 양념과 간을 맞추는데 소금이 뭉텅이로 들어가 소태가 된 떡볶이, 완성된 떡볶이 맛을 본 선혜 씨와 하은이 동시에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엄마, 맛있어.” 하은이는 밝게 웃었다. 그리고 또 다른 도전 외줄 그네타기, 힘차게 창공을 차고 오르는 그네, 그녀가 놓치지 않으려고 힘껏 움켜쥔 것은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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