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21:15 (목)
코로나19가 부른 사이비 종교의 그늘
코로나19가 부른 사이비 종교의 그늘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0.04.30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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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류한열

코로나19가 부른 세상 변화는 눈부시다. 코로나19가 조금씩 꼬리를 감추면서 사람들은 일상의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황금연휴에 마스크를 벗고 관광지를 찾은 인파가 방역 당국을 불안하게 해도 봄날의 유혹은 죽음보다 강하다. 언제 바이러스 공포가 있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아직 이르다는 말은 귓전에 맴도는 메아리일 뿐이다. 코로나19가 남긴 상흔은 치유돼야 하지만 치유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면 코로나19가 만든 골은 채워지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 그대로 남을지도 알 수 없다. 아예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기에 어쩌면 도래할 신세계를 충격 없이 수용할 체력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언컨택트(uncontactㆍ비대면) 사회를 제대로 경험하면서 기업의 생존을 예견할 지식이 생겼다.

코로나 사태로 항공ㆍ에너지ㆍ자동차 업체는 위협을 실감했고 비대면 기업은 경쟁력을 보였다. 사람의 소비 형태 변화를 잘 예견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 대유행은 세계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 말해도 토를 달 사람은 많이 없다. 종교 행위 변화도 불가피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이비 종교의 치명적인 폐해가 들춰지고도 순수한 신앙심의 표현은 더 뜨거워졌다.

코로나 사태로 코로나보다 더 치명적인 사이비 종교의 그늘을 봤다. 코로나19 확산에 종교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동원됐다. 종교는 이웃의 아픔을 품는 덕목이 빠지면 존재감을 잃는다. 종교가 이웃의 아픔에 기름을 부으면 되레 사회의 악이 된다. 우리는 종교의 허울이 넘실대는 모습을 보면서 종교의 무용론이 힘을 받는 데까지 갔다. 정통 기독교에서 주일마다 드린 예배 또한 눈 밖에 났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면서 교회당 안에서도 2m 간격을 두고 앉아 예배를 드렸지만 비신도들이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독교에서 국가가 종교 행위를 제한하는 일은 위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한다. 아직까지 정통 교회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반쪽짜리에 매여있다. 코로나19가 종교 생활에 위협을 가하면서 종교 탄압이라는 항의에 바른 종교를 찾는 길도 드러났다.

코로나19 사태는 삶의 근본을 흔들면서 종교의 수요가 더 많아질 길을 열었다. 사이비 종교의 그늘을 보면서 바른 종교의 양지를 바라보는 힘이 길러졌다. 칼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측과 `종교는 아픔을 없애는 행복 바이러스`라는 말에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게 됐다. 정통 기독교가 보는 성경에는 세상의 끝을 두고 있다. 사이비 종교는 이 끝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자신들의 교주를 내세운다. 공포심을 조장하고 신격화 신앙을 만든다. 14만 4천명을 내세워 폐쇄성을 극대화한다. 코로나19로 불확실한 세상은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믿음`은 종교로 이끌 좋은 호재다. 종교의 선택은 자유지만 종교 선택의 잘못된 결과는 사회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 바른 신앙의 길이 필요하다.

사이비 종교는 자주 비뚤어진 정치인과 춤을 춘다. 정치인은 사이비 종교와 힘을 합해 힘을 키우기 위해 종교 탄압을 내세우기도 한다. 종교 탄압이 사이비 종교를 키우는 힘이 된다. 코로나19가 일깨운 사이비 종교의 폐해 틈으로 코로나의 아픔을 치유하는 바른 종교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코로나19를 퇴치할 때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 되지만 사이비 종교 감염의 치유 끈도 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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