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 술 석 잔에 담긴 의미
반주 술 석 잔에 담긴 의미
  • 경남매일
  • 승인 2020.04.2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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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옛날 어른의 밥상에는 으레 반주(飯酒)가 따른다. 이 반주 문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다. 반주를 중국에서는 하반주(下饭酒),좌반주(佐饭酒), 일본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한자를 쓴다.

우리나라의 예전 반주는 대부분 가양주(家釀酒)로서 가정에서 계절에 맞춰 여러 종류의 술을 빚었는데 술맛은 그 집 안주인의 내공에 달렸는데, 적절한 발효 도수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두세 차례씩 술독에 귀를 대고 뽀글대며 술 익는 소리를 체크했다고 한다.

초복 후에 길일(吉日)인 신미(辛未)ㆍ을미(乙未)ㆍ경자(庚子) 일을 골라 누룩을 빚어 추석에 햇곡식으로 신도주(新稻酒)를 빚고, 음력 9월 9일로 제비가 따뜻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전해지는 중구(重九)에 대비해 국향주(菊香酒)를 빚어 가을ㆍ겨울 동안의 반주로 이용했다. 정월 설날을 대비해 소곡주(素麯酒)를 빚고, 봄철에는 삼해주(三亥酒)를 빚어 봄과 이른 여름까지 대비하고 복중(伏中)을 대비해 소주에 용안육ㆍ대추ㆍ인삼 등을 넣어 삭혀 약소주(藥燒酒)를 준비한다.

이 외에도 계절마다 화향(花香)이나 송화(松花), 죽엽(竹葉)ㆍ송순(松筍) 등으로 특별주를 빚었다.

술을 빚는 길일(吉日)은 정묘(丁卯))ㆍ경오(庚午)ㆍ계미(癸未)ㆍ갑오(甲午)ㆍ을미(乙未)일 등이었다.

이렇게 담근 가양주를 바깥주인은 식사 때마다 반주로 즐겼는데, 유기로 만든 주발 뚜껑은 가마솥에서 금방 퍼 온 밥의 열이 가해져 있는 상태로 이 뚜껑에 약주를 따르면 3~4분 후 술이 데워져 술맛이 부드러워진다.

반주는 밥주발(鑄鉢) 뚜껑에 술을 따라 엄지손가락이 닿지 않을 정도면 약주 잔 한 잔이며,이 양 석 잔이 기본이다.

반주는 주발 뚜껑 세 뚜껑 즉 약주 잔 석 잔을 넘기지 않는다. 만약 3잔을 넘기면 그 상은 밥상이 아니라 주안상이 되는 것이다.

반주 석 잔의 의미는 첫째 식도를 열어 음식물의 목 넘김을 원활하게 해주고, 둘째 술의 산미로 구미를 돋아주며, 셋째 소화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술 석 잔의 재미있는 일화로 조선 3대 주호(酒豪)의 한 사람인 손순효(孫舜孝,1427~1497) 이야기가 있다.

성종은 명상(名相) 손순효에게 "술 석 잔을 넘게 마시지 말라"는 계주령을 내렸다.

어느 날 손순효가 대전에 입시하고 있는데 성종이 불러 중국에 보내는 국서를 지으라고 했다. 하지만 손순효를 보니 이미 몹시 술에 취해 있었다. 성종은 노기를 띠며 "나의 경계를 잊어버리고 대취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렇게 흐린 정신으로 막중한 국서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 경은 물러가고 다른 신하를 불러오너라"고 했다.

손순효는 황공해서 부복한 채로 "오늘 신의 출가한 딸이 친정에 들러서 뭇사람의 권함을 이기지 못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었사오나 글을 짓는 데는 과히 지장이 없을 듯하니 다른 사람을 부르실 것 없이 신에게 하명하옵소서"라고 아뢰었다.

성종은 취중에 과연 어떻게 하나 보려고 성종이 붓과 벼루를 내주니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문장을 풀어놓았다. 성종이 그것을 받아보니 한 자, 한 구가 틀리지 않았다. 성종은 다소 괘씸했으나 그 취기에도 놀랄 만한 정신력을 지녔음을 보고 크게 칭찬하며 "너는 취한 정신이 한층 맑구나" 하고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해롭다 했다. 그리고 "하루에 이 잔으로 석 잔 이상은 마시지 말라"면서 은잔 한 개를 하사했다.

그러나 그가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연유를 추궁하니 임금이 내린 잔은 너무 작아서 그 잔을 은장을 시켜 두께만 얇게 다시 만들었으니 크기가 바가지만 했다 한다.

손순효는 바가지만 한 잔으로 석 잔만을 매일 마셨으니 삼배주계(三盃酒戒)를 지키고 자기의 주량도 채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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