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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서 나온 최초 `4ㆍ19 관련 논문` 게재
진주서 나온 최초 `4ㆍ19 관련 논문` 게재
  • 김정련 기자
  • 승인 2020.04.19 21:2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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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한국국보문학 4월호에

허만길 박사 역사 자료 실어

시위 진행 상황ㆍ선언문 담아
허만길 문학박사
허만길 박사가 4ㆍ19혁명 60주년을 맞아 `진주의 4ㆍ19혁명 상황과 허만길 선언문 회고문`을 펴냈다. 사진은 한국 국보문학지 4월호 책 표지.
17살이었던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이 진주극장 앞 광장에서 낭독했던 선언문 내용.

4ㆍ19혁명 60주년을 맞아 당시 17살 진주사범학교 학생회 위원장 겸 학도호국단 운영위원장이던 허만길 문학박사의 회고 논문이 충절도시 진주의 역사 자료로 남게 됐다.

월간 한국국보문학은 최근 출간한 `월간 한국국보문학 2020년 4월호`에 허 박사가 쓴 `진주의 4ㆍ19혁명 상황과 허만길 선언문 회고문`을 `4ㆍ19혁명 60주년 기념 특별기고`로 실었다.

`4ㆍ19혁명 60주년 기념 특별기고`는 60년 전 허 박사의 기억과 그의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2007)`, 부산ㆍ동아ㆍ조선일보 당시 기사의 내용을 참고해 펴냈으며 35쪽 분량이다.

허 박사는 4ㆍ19혁명의 발단과 일반적인 진행 과정을 소개하고 진주의 4ㆍ19혁명 진행 상황을 날짜별로 상세히 기술했다.

3ㆍ15부정선거 후 진주에서는 4월 17일 이전까지 산발적 시위와 민주당원의 철야농성이 있었다.

시위를 벌이려는 학생 및 민주당원과 경찰의 주시가 대치되는 상황 속에서 4월 17일,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상황을 펴낸 신문사들의 기사를 종합해 볼 때, 민주당 진주시 당사는 4월 18일 모두 부서진 것으로 판단된다.

허 박사는 4월 25일 진주 시내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 시위를 벌이던 중, 학생 시위대 가운데 경찰서장을 처음 만난 것은 본인이라고 밝혔다.

허 박사는 경찰서장에게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지 말라고 요구했다.

진주사범학교 12학급 600여 명이 오전 9시 신안동 교정에 집합 후 시위를 이어 가던 중, 진주극장 앞 광장에서 허 박사가 선언문을 낭독했다. 허 박사는 당시 파란색 잉크 펜으로 가로 약 22㎝, 세로 약15㎝ 크기의 편지지에 기록된 선언문을 46년 동안 간직했다. 또한 빛이 바라고 종이가 낡아 찢어지기 시작한 낭독문을 지난 2007년 발행한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 원고에 옮겼으며 애틋한 마음으로 불태웠다고 밝혔다.

허 박사는 "60년 전, 진주는 `전국적으로 데모가 가장 위험한 지대`로 보도됐을 정도로 격렬한 상황이 연출된 역사적 현장이었지만, 이러한 사실이 잊히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논문을 펴게 됐다"며 "진주는 역사의 고비를 경건한 마음으로 극복해 낸 위대한 도시"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허 박사는 진주에서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시 `10대의 그날들`, `젊은 날의 아픔`, 수필집 `열네 살 푸른 가슴` 등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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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도 2020-04-20 19:03:09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

나은 2020-04-20 16:03:07
정말 대단하세요. 존경합니다~

김보영 2020-04-20 15:36:59
허만길 스승님은 한국의 국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