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느끼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거제 `병아리국`
계절 느끼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거제 `병아리국`
  • 경남매일
  • 승인 2020.04.13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대지에 봄기운이 솟아나 얼음 깨지는 동빙 소리가 나고 매화꽃 피면 경남 사천, 남해, 거제 지역 바다 어부들의 그물에 병아리가 황금빛 몸놀림으로 봄을 유혹한다.

매화꽃이 피고 벚꽃이 지는 약 한 달에서 한 달 보름간 남해안에서만 잡히는 `병아리`를 `앵아리`라고도 한다. 주로 봄철 멸치잡이를 할 때 함께 많이 어획되는 `병아리`는 충남 당진 지역에서 잡히는 베도라치 치어인 `실치`나 바다빙어목 뱅엇과인 `뱅어`와 비슷하지만 몸이 칼국수처럼 좀 더 납작하게 생겨 한눈에 구분할 수 있다.

`병아리`는 `사백어(死白魚 시로우오 シロウオ)`라고 한다. 죽으면 흰색으로 변한다 해서 `사백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일본에서는 노레소레(のれそれ)라고도 부른다. 체장 6㎝ 안팎에 칼국수 가락처럼 넓적하고 두께는 얇다. 남해안에서 나는 `병아리` 즉 사백어의 정체는 붕장어의 치어(穉魚)다.

19세기 전기 거제시 거제면에 거주했던 거제 학자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1779~1843) 선생은 사백어가 물가에서 노는 것을 보고 7언 율시 한 편을 남겼는데, 하천에 얼마나 많은 사백어가 올라왔으면 `하천 바닥에 실이 유영하는데 주름진 비단을 두른 듯하다`고 표현했을까.

촘촘한 대나무로 만든 족대 자루로 사백어를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제도의 명물 사백어(병아리)의 한시 한 편을 감상해 보자.



肌明髄潔麫條均(기명수결면조균)

살갗이 투명하고 뼛골이 깨끗하니 두루 뱅어(면조)라 부르는데

春暖芳洲逆水遵(춘난방주역수준)

따뜻한 봄날, 아름다운 물가에 역류하는 물을 따라 올라왔다.

川底游絲縈霧縠(천저유사영무곡)

하천 바닥에 실이 유영하니 자욱한 주름 비단을 두른 듯하다가

潮頭亂絮遂風輪(조두난서수풍륜)

밀물에 어지러운 솜이 바람 따라 떠다닌다.

纎蛛雖密難爲綱(섬주수밀난위강)

거미는 가는 줄로써 촘촘히 거물 짜기 어렵고

獨繭猶麁不足綸(독견유추부족륜)

누에고치는 홀로 그물을 대충 짤 수도 없다네.

因學罭囊裁大布(인학역낭재대포)

어망 자루를 본뜨려고, 거친 피륙으로 만들고는

却依罼柄理脩筠(각의필병리수균)

다시 마른 대나무로 꿰매어 족대 자루를 완성했다.



나는 옛 시를 떠올리며 `병아리` 맛을 보기 위해 거제 동부면사무소 앞에 있는 명화식당(경남 거제시 동부면 동부로 13(구 주소 : 동부면 산양리 373-1) 전화 : 055-633-2985)에 전화를 했다.

`병아리` 요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차를 몰아 식당을 찾아갔다. 작은 식당 안에는 `병아리` 요리를 먹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 병아리 요리 풀코스(3만 원)를 시켰다. 먼저 병아리 회가 나왔다. 야채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황금빛 병아리. 비위 약한 사람은 먹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병아리 회 접시에 초장을 부우니 사방으로 초장이 튈 정도로 움직인다. 이것을 요령 있게 먹어야 한다. 입 안에 넣고 씹기도 전에 산채로 목구멍에 넘어가는 놈도 있다. 예전에 당진에서 맛본 후루룩 마시듯 먹는 `실치회`와는 전혀 다르다. 조리라고 할 것도 없지만 병아리를 소금 등으로 숨을 죽인 후 `실치회`처럼 먹을 수 있게 한다면 좋을 듯싶다. 옛날에도 날것을 국수 먹듯이 후루룩하고 먹었다고 해서 `국수`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병아리 전은 입안에 착 감길 정도로 맛이 있다. 특히 병아리국은 예전부터 이 지역에서 흔히 해 먹는 향토음식으로 병아리가 마치 흰 국수와 같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허백당(虛白堂)ㆍ성현(成俔, 1439~1504)의 허백당보집(虛白堂補集) 제2권 시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白魚 卽杜詩所謂白小今人謂之麪條魚

(백어 즉두시소위백소금인위지면조어)

백어 즉, 두보의 시에서 말한 백소인데, 지금 사람들은 면조어라고 부른다. 아마 백어(白魚)가 국수 가닥 같아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현지 어민들의 말을 빌리면 "앵아리는 3, 4월쯤 봄 멸치를 잡기 위해 설치한 정치망이나 권현망, 남해 죽방렴 등에서 멸치와 함께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먹지 못하는 것이 바로 병아리 요리다.

경남 연안의 정치망에서만 해마다 20t 정도 채취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잡은 병아리는 봄철 별미로 초장에 버무려 먹는 회와 회무침, 갖은 봄나물과 함께 끓여 먹는 된장국, 병아리를 넣은 계란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