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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ㆍ관심은 상대에 대한 예요 복 짓는 일
배려ㆍ관심은 상대에 대한 예요 복 짓는 일
  • 경남매일
  • 승인 2020.03.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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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사람이 사회생활을 해가면서 아주 하찮은 것을 가지고 마음을 상하기도 하고 멀어지게 된다.

공자도 구운 고기 즉 번육(燔肉) 때문에 노(魯) 나라의 사구(司寇)라는 벼슬을 하다가 면관(冕冠)도 벗지 않은 채 노 나라를 떠나 버렸다.

燔肉旣不至(번육기부지)
구운 고기가 이르지 않으니
孔子輒去魯(공자첩거로)
공자는 문득 노나라를 떠났고
醴酒復不設(예주부불설)
감주가 다시 차려지지 않으니
穆生亦辭楚(목생역사초)
목생 또한 초원왕을 떠나버렸네
古人道義交(고인도의교)
옛 사람은 의교를 말했고
政在愼出處(정재신출처)
정사는 신중한 출사와 물러남에 있네
寥哉聖賢心(요재성현심)
허전하구나 성현의 마음이여
夫豈餔啜故(부기포철고)
옛날에는 어찌 먹고 마셨는지

이 시를 읽어보면 번육을 보내지 않은 것 때문에 노 나라를 떠난 것으로 됐지만 그의 가르침이 통하지 않고, 노 나라에 예가 없기 때문에 떠난 것이다,

논어에도 본래 군자의 행동을 중인은 알지 못하는 법이라 했다. 이 시에 나오는 `예주불설`이라는 말 역시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인해 노신(老臣)이 왕 곁을 떠난 것을 묘사한 것이다. 한서 초원왕전(楚元王傳)에 `초연사례(楚筵辭醴)`에 나오는 말인데, 한 나라 때 초 원왕 유교(劉交)는 한 고조 유방(劉邦)의 막내아우다. 유교는 목생(穆生)ㆍ백생(白生)ㆍ신공(申公) 이 세 사람의 사부 중 한 사람인 목생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을 알고 연회가 열릴 때마다 술을 못 마시는 목생을 위해 술 대신 단술 즉 예주(醴酒)를 준비해 대신 들게 했다.

한서에 주석을 붙인 안사고(顔師古)는 "예(醴)는 감주(甘酒)이다. 적은 양의 누룩에 많은 양의 쌀을 섞어 하룻밤 재운 다음에 완전히 익지 않도록 해 만든다"고 했다. 이로 미뤄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누룩을 조금만 넣고 짧은 시간 동안 발효시킨 음료인 예주(醴酒)는 단술[甘酒] 즉 식혜(食醯)다.

물론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발효원인 국(麴 : 누룩)으로 빚은 것을 주(酒)라 했고, 맥아(麥芽; 보리싹)로 빚은 것을 례(醴)라 했다.

유교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 목생에게 예주를 준비한 것은 신하에 대한 배려였고, 덕을 정치의 원리로 하는 왕도였다.

한편 유교가 죽고 아들 유영에게 왕위가 이어졌으나 재위 4년 만에 죽자 손자인 급왕(及王) 유무(劉戊)가 물려받았다. 유무 역시 처음에는 연회 때 목생을 위해 예주를 준비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단술 준비를 소홀히 하자 이런 말을 하면서 벼슬에서 물러났다.

可以逝矣(가의서의)
이제 나도 떠날 때가 됐다.
醴酒不設(예주불설)
단술을 내놓지 않으니
王之意怠(왕지의태)
왕이 나를 잊은 것이 아닌가?

이로부터 `감주(甘酒)를 차리지 않는다`는 뜻의 `예주불설(醴酒不設)`은 모시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홀대를 당하거나 다른 사람의 관심과 애정이 식었다고 느낄 때 쓰는 말이다.

상하를 떠나서 관심을 갖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애정으로 진심을 다 한다면 그 자체가 복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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