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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화된 책 읽기와 글쓰기
습관화된 책 읽기와 글쓰기
  • 경남매일
  • 승인 2020.03.2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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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책 읽기와 글쓰기가 몸에 밴 나는 글 한 편 쓰는 것을 일상적인 평범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주변 지인들은 다들 글쓰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어느 곳에서 축사 청탁이 왔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대강 줄거리를 적은 것을 건네며 써 달라고 부탁한다. 하도 그런 청탁을 많이 받아서 군말 없이 써준다. 그들은 그렇게 빨리 글 쓰는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특별한 비결은 없고 그냥 써지는 대로 쓴다고 말하며 웃고 만다. 이럴 때 써먹는 적당한 말은 바로 `내공`이다. 모 TV 방송국에서 매주 방영하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가 있다.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오랜 숙련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익숙하게 된 일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일의 숙달에 의해 달인이 된 것과 글쟁이가 되는 과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달인이 되기까지 그 작업에 익숙하기 위해 수천 번의 반복 훈련과 아이디어가 접목되듯이, 글쓰기도 많은 독서와 쓰기 연습 과정을 통해 숙달된다. 달인은 손발 등 신체적 동작 연습의 소산이라면 글쟁이는 다독과 다색의 소산으로 보면 될 것이다. 한편의 문장은 자신이 읽은 책 내용의 해체를 통해 재편집과정을 거쳐 자기 생각의 첨가(비평)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독서는 습관`이라는 말에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책과 담을 쌓기 마련이다. 지난해 국민 독서통계 수치를 보니 연간 1인당 평균 독서량은 고작 6.1권에 불과했다. 특히 성인의 경우 1년에 책 1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40%나 된다고 하니,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독서량이 이 정도니 글쓰기야 오죽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 글쓰기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마 이조 5백 년 동안 글쓰기는 양반계급 즉, 학문한 선비들의 특권처럼 여겨진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제 글쓰기는 소위 문인이나 학자 층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글쓰기 시대가 됐다. 요즘 전업 작가인 문인들이 펴낸 책보다 특수직종의 직업인이나 여행가들이 지은 책들이 더 잘 팔리는 세상이 됐다. 문인들이 쓴 시나 소설들은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잘 팔리지 않는다. 언젠가 저명 원로 시인들이 요즘 젊은 시인들이 쓴 시를 읽어보면 도대체 허공을 항해 짓는 소린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대놓고 비판했다. 물론 독자가 알아주든 말든 자기 생각을 자기 나름의 형식을 빌려서 쓴 시니까 비판할 일은 아닌 것도 같다. 필자의 손을 떠난 글은 이미 자기 글이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독자만이 읽고 판단할 뿐이다. 비평가 모리스 블랑쇼는 `시구를 파는 모든 우상을 거절해야 하고 모든 것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진리도 체류할 미래도 갖지 말아야 한다. 희망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는 문학작품은 작가가 탄생시킨 순간 내 것이 아니며 독자에게 가는 순간 다른 것이 된다는 뜻이다. 책 읽기는 내 글을 쓰는 행위로서 문학은 읽기와 쓰기가 만들어 내는 무한한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 역시 책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어쩌다 글쟁이(?)가 돼 수천 편의 잡문을 썼지만 어느 누구한테서도 글쓰기 공부를 받지 않았다. 많이 읽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문인 입문 과정인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고 난 후 덜컥 겁이 나서 수필과 소설 작법을 새삼 몇 권 사 읽어보니 기성작가들이 얘기하는 내용이 내 글 속에 이미 용해돼 있음을 알았다. 글쓰기는 많이 읽으면 저절로 물미가 터져 써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고 내가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애당초부터 없었다. 어쩌다 보니 TV 프로의 달인 비슷하게 돼버린 것이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지만 글쓰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총, 균, 쇠> <대변동>의 저자인 대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도 책을 쓰기 위해 수집한 자료 더미를 보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라고 했다.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은 그 고통을 재미로 여기며 또 글을 쓴다. 남의 책을 읽기 때문에 내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독서가 바로 글쓰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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