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2:33 (토)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요수 인자요산
  • 경남매일
  • 승인 2020.03.15 2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가 이광수

논어 전편 옹야(雍也)에 `지자요수(知者樂水)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자왈(子曰) `지자요수(知者樂水)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동(知者動)인자정(仁者靜) 지자락(知者樂)인자수(仁者壽)`의 원문 문지(聞之)다.

풀이하면, 공자께서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조용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기고 어진 사람은 천수를 누린다`이다.

여기서 공자는 시인처럼 지자와 인자를 읊조리고 있다. 지자는 현실적이고 사물의 이해득실을 냉철하게 판단하며, 시간과 공간에 따라 유동적인 입장을 취한다. 현실에 적응하는 지성을 갖추고 존재하기를 원하며, 선악을 가려 분별하지만 성인(聖人)은 없다. 그러나 인자는 이상적이며 사물의 이해득실을 떠나 만물과 더불어 변함없이 사랑하면서 존재한다. 항상 온갖 것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덕성을 지니고 존재하기를 바란다.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만물과 더불어 동고동락한다. 그래서 성인은 모두 인자이며 죽지 않는다(논어. 윤재근. 동학사 ).

공자와 노자가 보는 지자와 인자의 관점은 서로 다르다. 공자는 인자는 물론 지자까지 긍정하는 성인이라면 노자는 지자를 부정하는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맹(孔孟)과 노장(老莊)의 사상은 지자를 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된 흐름은 지자의 슬기로움과 현명함이 대세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실현하고, 더 많이 소유해서 남보다 앞서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학습하고 인식되는 경쟁 사회이다. 그 결과 지자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낙오되고 도태되는 냉정한 세상이 됐다. 소위 시장 자본주의 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적자생존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공맹이 바라보는 세상사는 지자도 인자도 같은 기준에 놓고 판단한다. 지자의 냉혹함을 인자의 너그러움과 포용력으로 수용한다. 우주 만물의 위대한 섭리에 따라 변화무쌍한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것을 인간의 근본으로 삼는다. 유유히 흘러가는 물은 자신의 모습을 주변 환경에 맡긴다. 굴곡진 계곡을 흐르면 계곡의 생김새에 따라 굽이쳐 흐르고, 큰 강을 만나면 그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유유자적 흘러간다. 우뚝 솟은 산은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자는 변화하고 쉴 새 없이 의식하는 반면, 인자는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물을 사랑한다.

주역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동정유상(動靜有常)강유단의(剛柔斷矣)`라는 말이 있다. `동(動)과 정(靜)에는 변함없는 것이 있어서 강함과 부드러움이 판단된다`는 뜻이다. 지자동(知者動)은 강(剛)이요, 인자정(仁者靜)은 유(柔)인 것이다.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다(유약승강강 : 幼弱勝强剛). 산은 멈춰 제 모습을 누리기 때문에 인자수(仁者壽)가 된다. 지자는 사물을 즐기고(탐하고), 인자는 생명을 즐기기 때문에 인자수의 수(壽)는 천명을 다 누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자는 세상사는 평범한 이치를 `지자요수 인자요산`에서 적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자가 지자를 이긴다는 말이지만, 요수(樂水)와 요산(樂山)을 두루 포용하는 도(道)가 공자가 말한 인(仁)의 사상인 사랑인 것이다. 공자는 나와 다름을 수용하고 나와 같음을 기꺼이 반기면서 동고동락하는 인애(仁愛)를 주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인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요산요수는 `너는 메광(山狂)이고 나는 물광(水狂)이다`는 식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갈등한다. 용서와 화해와 포용이라는 보편적 상식이 뿌리내리지 못한 사회는 굶주린 이리떼가 우글거리는 황야나 다름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이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런 일로 쉽게 무너질 한국은 아니다. 우리의 저력이자 장기인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는 지(知)와 인(仁)을 발휘할 때이다. 이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려놓고 역지사지하는 지자와 인자의 바른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