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15:02 (화)
올봄에 부는 정치 바람엔 봄이 없다
올봄에 부는 정치 바람엔 봄이 없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0.03.05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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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류한열

봄의 소리는 생명을 부르는 외침이다. 스르르 다가오는 봄의 환희가 예전 같지 않은 이유는 코로나19의 음침한 손길이 모든 곳에 미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의 기세가 꺾이지 않아 코로나19의 음흉한 목소리가 더욱 봄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좋은 시절 봄이 와도 마음이 여의치 않을 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다. 오래전 신문에 `지식이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이맘때 편집 기자가 꽃샘추위가 오면 춘래불사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사진을 1면에 갖다 붙였다. 올봄은 유난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라는 말을 쓰기에 적당하다. 코로나19가 새봄이 왔다고 기세를 쉽게 누그러뜨리지 않고 4ㆍ15 총선을 앞두고 꼬이는 정치 상황은 더더욱 봄을 밀어내고 있다. 어느 해 봄보다 매서운 봄이다. 봄의 외침을 몰아내는 여러 상황이 겨울을 그대로 안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판에서 여야가 다투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여야가 각을 세워 찬바람을 일으켜도 봄바람을 덮을 수 없다. 봄의 소리는 순리이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판에는 꼼수가 난무하기 때문에 순리를 말하기가 멋쩍다. 총선에도 국회의원 한 석을 더 얻기 위해 비례당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정치 개혁을 말하면서 내세운 비례형 연동제가 비례대표 전용 정당(비례당)을 낳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잘한다고 박수를 할 수 없지만 민주당이 비례당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너마저 비례당`이라는 푸념을 안 할 수 없다. 민주당은 통합당에 대고 온갖 말로 비례당 창당은 꼼수라고 몰아붙였다. 정당이 의원 수를 더 얻기 방법 앞에는 원칙이나 정의는 노름판의 개평밖에 되지 않는다. 혹 민주당이 직접 비례당을 만들지 않더라도 유사 민주당 비례당은 반드시 나오게 돼 있다. 이런 판국에 봄이 왔다고 소리 지를 수가 없다.

민주당 핵심 인사 5명이 서울 마포구 음식점에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자는 밀실 소리는 가관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은 코로나19 확산 소식보다 더 음습하다. 이들 5명은 지난해 말 선거법 개정안 등을 패스트 트랙에 태울 때 가장 힘을 쓴 사람들이다. 소위 말해 선거법 개혁에 겉으로든 진심이든 가장 높이 손을 들고 환영했다. 이들은 자기 당이 불리하다고 판단해 명분을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잘해보자"고 손을 잡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비례정당 설립에 "명분이 없다"고 연초에 밝혔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비례정당을 두고 "위장 정당이고 한마디로 가짜정당. 참 나쁜 정치"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말들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전해철 의원의 "비례정당을 해야 하는 간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비례당 추진을 별개로 하더라도 말로 구실을 달면 된다는 논리다. 봄이 오지 않았는데 봄이 왔다고 강변하면 "봄이 온 것"이라는 논리다. 정치하기 참 편하다.

우리 정치는 결과로 모든 과정을 덮을 수 있다. 정치판에서는 봄이 오면 봄이 오는 과정에서 겪은 인고의 시간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경박한 정치 풍토에서 대의를 위한 손해를 보는 큰 정치인이 필요하다. 여야는 정치를 하루만 할 것처럼 한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정당의 존립 목적마저 흔들려도 상관이 없다. 우리 정치에서 진영 논리가 판을 치는 형국에서 여든 야든 논리를 만들어 갖다 붙이면 통한다. 정치의 봄은 없다. 느끼는 봄이 아닌 규정한 봄이 중요하다. 이런 날이 이어지면 우리나라 정치의 봄은 요원하다.

여야 공천 과정에서 나오는 파열음을 보면 정치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게임이라고 실감한다. 아침에 친구가 저녁에 적이 되는 공천 전쟁을 보면서 우리 정치는 작은 장기판에서 움직이는 장기짝을 보는 느낌이다. 예비후보들이 만드는 논리는 참 가관이다. 컷오프(공천 탈락)당하지 않으려는 예비후보는 무조건 자신이 우선돼야 한다. 홍준표 전 대표가 만들어내는 출마의 당위성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일방적인 통고다. 함께 등장하는 나동연 전 양산시장이 아군인지 적군이지 하루아침에 왔다 갔다 했다. 속 깊은 소리는 알 수 없어도 비정한 정치의 바람이 스쳐 간다. 이런 공천 과정에서 봄을 막는 소리와 비례당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묶여 도통 정치의 봄날은 기대하기 힘들다. 여러 비례당이 꼬여 선거 당일 헷갈릴 일이 많을 것이다. 어느 투표 때보다 공부하지 않고 투표장에 들어가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올봄에 부는 정치 바람에서 봄은 없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는 말에 한기를 느껴야 하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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