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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의 사진 한 장
결정적 순간의 사진 한 장
  • 경남매일
  • 승인 2020.03.0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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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은 펜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하다.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월맹과의 전쟁에서 수백만 톤의 폭탄을 기다란 베트남 땅에 소나기처럼 퍼부었지만 결국 미국은 패배의 쓴잔을 들고 물러나야만 했다. 베트남 전쟁이 절정이던 1972년 6월 8일 사이공(현 호찌민) 서쪽 짱방마을이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을 당했다. 가족과 함께 피신하던 어린 소녀 판티 킴쿡은 화상으로 불타버린 옷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울며 달아나고 있었다. 이 어린 소녀를 목격한 AP 통신 종군기자 닉 우트는 `네이팜탄의 소녀`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찍어 특종 보도하자 전 세계인들은 경악했다. 닉 우트는 이 사진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화상을 입은 판티 킴쿡은 17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종전 후 정부 배려로 캐나다로 가족과 함께 망명한 그녀는 1997년 유네스코 유엔 평화문화 친선대사로 임명돼 전 세계를 돌며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해 왔다. 이 공로로 2019년 2월 독일에서 `드레스덴 인권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사진 한 장이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물론, 미국 국민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드디어 국내외 반전 여론에 굴복한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를 공식 인정하고 지루한 8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미군은 철수했다. 물론 이 전쟁에 한국이 파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쟁 종군기자로 세계 각지를 누비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기치 아래 단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류에게 일깨워준 보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그룹이 <매그넘 포토스(Magunum Photos)>이다. 매그넘 포토스는 1947년 헝가리의 로버트 카파,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니셜HCB), 폴란드의 데이비드 시무어, 영국의 조지 로저 네 사람이 창립한 국제자유보도 사진작가그룹이다.

이 클럽의 창립을 주도한 사람은 로버트 카파지만 세계적인 보도 사진작가클럽으로 키운 사람은 HCB이다.

1952년 인도에서 간디 암살 직후 장례식을 취재 보도해 명성을 떨친 그는 사진작가, 화가, 다큐영화 제작자였다. HCB는 세계 각국의 사건 현장을 돌며 35미리 라이카 카메라로 사실대로 생생하게 기록해 보도 전시했다. 사진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결정적 순간`은 바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명언으로 이 말은 그의 사진 예술관을 가리키는 대명사이다. 또 한 사람 매그넘 포토스 창립 주창자인 로버트 카파가 1936년 스페인 내란을 종군 취재해 보도한 사진 `왕당파 병사의 죽음`은 스페인 내란을 상징하는 한 장의 사진으로 유명하다. 그는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를 목숨을 걸고 누비는 종군기자였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촬영한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는 미군 부대`도 그의 걸작이다. 중동전쟁은 물론, 인도차이나 전쟁에 종군 취재하던 1954년 베트남 타이빈에서 부비트랩(지뢰)을 잘못 밟아 사망했다. 그는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고 하면서 사건 현장 가까이에서 셔터를 누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함에 따라 이제 사진은 사람이 피사체를 찍는 게 아니라 기계가 자동으로 찍는 시대가 됐다. 사진작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작가처럼 사진을 잘 찍는다. 문제는 무엇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 작가 여부가 판가름 난다. 광고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상업적 사진가는 HCB가 말하는 `결정적 순간`을 잡아내는 사진작가 축에 끼지 못한다. 디지털 사진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후 작업으로 분식하는 사진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사진적인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한 장의 사진으로서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즘 LP 레코드 붐과 함께 필름 카메라 복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제 1억 8백만 화소 스마트폰 출시로 디카도 조종을 고할 때가 서서히 다가오는 것 같다.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라는 인식 없이 찍은 한 장의 사진은 결코 `결정적 순간`의 포착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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