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0:21 (목)
‘항일운동’ 윤주석 전 하동고 교장 서훈 추진
‘항일운동’ 윤주석 전 하동고 교장 서훈 추진
  • 이문석 기자
  • 승인 2020.02.25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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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상회서 독립자금 총괄

방정환 등과 민족문화운동

한시ㆍ노래ㆍ타령 지어 전파
항일운동 행적이 확인돼 서훈이 추진되는 남평 윤주석 선생(동그라미 안 인물)의 생전 모습.

 

일제강점기 중국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 창구역할을 했던 부산 백산상회에서 자금을 총괄한 남평(南平) 윤주석(尹柱石ㆍ1889∼1954ㆍ남해군 설천면) 전 하동고등학교 교장의 독립운동 행적이 선생의 유품에서 확인돼 서훈이 추진된다.

하동군과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선생의 막내딸 윤덕연 전 부산 토성초등학교 교장(81ㆍ부산시 해운대구)이 제공한 선생의 유품과 김일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83)가 연구 분석한 ‘남평 윤주석 선생 유고집’(고려대 부산교우회 2009년) 자료에서 선생의 항일운동 행적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자료에 의하면 윤주석 선생은 1915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상과를 졸업 후 1916년 백산상회 서기로 들어가 백산 안희제와 호형호제하며 1920년 8월까지 동지적 결합으로 무보수로 일하며 자금과 조직 관리를 총괄하며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비밀리에 전달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와 만주독립운동 자금의 6할이 백산상회 안희제로부터 나왔다고 밝힌바 있다.

또한 선생은 안희제의 뜻에 따라 1920년대 경남은행 하동지점에서 7년간 근무하며 어음 할인을 통한 독립자금 송금을 맡았다.

그리고 하동에서 ‘섬강한시회(蟾江漢詩會)’를 주관, 안희제(의령 출신ㆍ건국훈장), 방정환(아동문학가ㆍ건국포장), 이승훈(전 동아일보 사장ㆍ건국훈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근 진주ㆍ사천ㆍ남해ㆍ광양ㆍ구례지역 유력인사들과 교류하며 시국을 논하고 독립자금 모집과 상해 임시정부의 국내 연통제(聯通制) 구축도 힘썼다.

선생은 이와 함께 1919년 11월 부산에서 안희제 주도로 결성된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 설립의 실무를 도맡아 추진했다.

윤주석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1937년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암송 강요, 1940년 창씨개명 등 민족 말살정책이 지속적으로 펼쳐지자 우리말 노래와 타령인 ‘입석가(立石歌), 무현금 상여가, 돈노래, 달노래, 봄노래, 개타령’ 등을 지어 영호남지역 장터를 돌며, 가장 서민적인 춤 ‘곱사춤’을 추고 우리 가락인 판소리와 시조창을 부르며 민족문화를 지키고 보급하는데 온몸을 던졌다.

이후 1947년 교육입국의 길로 나선 선생은 하동중학교 설립 기성회 사무국장, 하동향교 장의(掌議), 1949년 고향주민들의 부름을 받고 남해군 설천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1953년 하동지역민과 유지들의 영입을 받아들여 하동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선생은 부족한 교실난을 해소하기 위해 통영어업조합(수협)의 목조건물을 헐어 이송 신축, 인재양성을 하던 중 1954년 3월 6일 과로로 병을 얻어 순직했다. 향년 6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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