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고사리 돋아나면 아낙 얼굴이 밝아진다
봄 고사리 돋아나면 아낙 얼굴이 밝아진다
  • 경남매일
  • 승인 2020.02.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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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올해는 춘삼월이 되기도 전인 2월 중순에 매화꽃이 피었다. 조금 있으면 야산 등허리에 고사리도 돋아날 것이다.

옛말에 "시집온 새댁이 좋은 고사리밭 서너 곳을 모르면 쫓겨난다"고 했다. 고사리가 중요한 양식 노릇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제주 속담에는 한번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아홉 번이나 솟아난다고 해서 "고사리는 아홉 성제(아홉 형제)"라고 한다.

고사리는 산지의 물 빠짐이 좋은 경사진 땅에서 잘 사는 여러해살이풀로 몸에 갈색 털이 있는 땅속줄기는 옆으로 길게 뻗어나가며 거기에서 잎자루가 땅 위로 나온다. 우리는 갓 나온 잎자루와 잎을 뜯어서 주로 나물로 먹는다.

조선 후기 문신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그의 시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에서 애기했다.



 前山雨後蕨芽新(전산우후권아신)

 앞산에 비 온 뒤에 돋아나는 고사리 싹

 饌婦春來莫更顰(찬부춘래막경빈)

 밥 짓는 아낙이여 봄 왔으니 얼굴 펴오

 滿酌玉泉和麥飯(만작옥천화맥반)

 샘물 가득 떠서 보리밥 말아먹으면

 幽人活計不爲貧(유인활계불위빈)

 유인의 살림살이 가난하지 않다오



비가 오면 앞산에 고사리가 돋아나니 반찬 걱정할 필요가 없어 아낙이 얼굴 찡그릴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시다.

조선 숙종 때의 문인 농암(農巖)ㆍ김창협(金昌協:1651~1708)도 `농암집(聾巖集)`에 `池花未落我先歸(지화미락아선귀)못가 꽃 지기 전에 내 먼저 돌아갈 제 回首靑山戀蕨薇(회수청산연궐미)고개 돌려 청산 보니 고사리 못 잊겠네`라고 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역시 `南山有薇北山蕨 (남산유미북산궐) 남산엔 고비가 있고 북산엔 고사리 있으니 落日招招須我友(낙일초초수아우)석양에 친구들을 불러 나눠 먹으리라`라거나 `窮居臨水食無魚(궁거임수식무어)곤궁하니 물가에 살아도 고기는 먹지 못하고, 薇蕨登盤不敢餘(미궐등반불감여)고비와 고사리 반찬도 감히 남기지 않네`라고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두 편의 시에 읊었다.

조선 후기 북학파의 신진학자 이덕무(李德懋)ㆍ유득공(柳得恭)ㆍ박제가(朴齊家)ㆍ이서구 등 4명의 시를 초록한 시집 `사가시집(四家詩集)`에는 들 밥의 반찬으로 고사리가 나오는 봄비가 온 후 농촌풍경을 묘사한 `전가(田家)`라는 시다.



 家家野飯蕨芽香(가가야반궐아향)

 집집마다 들 밥 내가니 고사리가 향기로워라

 饁罷田頭笑語長(엽파전두소어장)

 먹고 나서는 밭머리서 웃으며 얘기 나누네

 可是今年春水足(가시금년춘수족)

 참으로 금년에는 봄비가 넉넉히 내렸기에

 桔?閑立送斜陽(길고한립송사양)

 두레박틀이 한가히 서서 석양을 보내는구나!



이렇듯 많은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고사리에 대한 시를 썼으며, 경남의 의령, 함안, 밀양, 함양, 거창의 `고사리 따기`라는 구전가요가 내려오고 있다.



 올라가면 올고사리/내려오면 늦고사리

 뱅뱅 돌아 도라지나물/어덕 더덕 더덕나물

 올방돌방 곤달비나물/이파리 넙덕 호무초나물

 오약삐약 비부초나물/쪽빠졌다 젖가치나물

 삐드라졌다 명태잽이 오골쪼골 깨나물

 두가지 벌었다 방어나물/가추가추 뜯어담아

 세폭 보가 귀가 벌었다/쾌치나 칭칭나네

 쾌치나 칭칭나네

 - 구술자 : 신의근 씨(64 경남 밀양군 산내면 임고리)



이렇듯 고사리(蕨)는 오랫동안 귀천을 따질 것 없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반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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