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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주는 사람과 시간 보내고 싶다
잘 들어주는 사람과 시간 보내고 싶다
  • 경남매일
  • 승인 2020.02.1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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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청지기 공동체 대표/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하성재

우리는 스스로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심리상담가들은 내담자들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많은 이유가 단순히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서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G. 베너(David G. Benner)는 "경청 능력의 성장을 막는 주된 걸림돌은 우리 대부분이 이미 스스로 잘 듣는 사람이라 착각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말만 많아서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관계를 이룰 수도 없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친밀한 관계는 일방적 대화를 통해서 또는 경쟁처럼 느껴지는 교류를 통해서는 실현될 수 없다. 우리의 정체를 발견하려면 다른 목소리들과 별개로 내 목소리만 찾아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목소리를 찾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는 듣기는 하지만 `제대로` 듣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본다.

(한 술 더 뜨기)"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는가? 지난주에 나한테 있었던 일을 말해주지!" 상대의 이야기를 말없이 쭉 듣는 이유는 더 낫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것을 능가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경쟁이다.

(교묘하게 말 돌리기) "어, 그거 대단한데. 그런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화자는 경청에 속아 헛되이 방심한 나머지 잠시 후의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한다. 즉 이 대화에 대한 듣는 이의 속셈을 모른다.

(심문) "지난주에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듣는 이는 일련의 질문을 던지는데 대개 폐쇄형 질문이며, 마치 형사가 용의자를 심문해 자백으로 유도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방향 틀기)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말이지…" 듣는 이는 화자가 언급한 주제를 서투르게라도 뒤집어 자기가 말하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로 넘어간다. 기어이 자기가 원래 하려던 말을 하고야 만다.

(독백) 상대가 말하는 동안에는 묵묵히 있다가 그다음부터 아무거나 자기 생각을 말한다. 마치 야간에 두 척의 귀먹은 배가 마주 지나는 것 같다. 언젠가 들었던 인용문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은 대화하는 게 아니라 타인 앞에서 독백을 한다.

정비사) "그건 이렇게 하면 되지." 이 사람은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를 듣는 정비사처럼 듣는다. 문제를 진단해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신이 고쳐주려 한다.

(부메랑 질문) "주말을 잘 보냈는가? 나는 말이지…"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진짜 의도는 자신이 답하려는 것이다. 질문이 나가다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자문자답할 거라면 상대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이러한 모습들은 모두 부정적인 경청이라고 할 수 있다.

애덤 맥휴(Adam McHugh)는 "경청, 영혼의 치료제"에서 "경청은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 중심이 돼야 하며, 무슨 일에 임할 때든 먼저 듣는 게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잘 듣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조언한다. 경청의 기법인 `능동적 경청, 풀어서 말하기, 거울처럼 반영해주기` 등을 배울 수는 있다. 하지만 듣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최선의 길은 이러한 기술 습득보다 잘 듣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경청을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활동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어렸을 때 누군가 잘 들어준 사람이 있었음을 본다. 그러나 잘 들어주는 부모가 누구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듣는 사람을 찾아 본받아야 한다.

잘 들어주는 사람들은 상대의 생각과 감정과 신념을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며, 상대의 말을 자신의 비판적 기준으로 걸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기준으로 그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사실 이해하려는 경청은 느린 작업이다. 잘 듣는 사람은 그 먼 길을 소신껏 가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길을 피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를 보면 그의 생활방식을 알 수 있다. 삶이 늘 바쁘고 급하고 부산하다면 들을 때도 산만하게 서두를 것이다. 이해하려는 경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 자체뿐 아니라 상대가 말하는 방식까지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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