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5:38 (화)
`기생충`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의 의미
`기생충`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의 의미
  • 김명일 기자
  • 승인 2020.02.17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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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국장 김명일

우리말로 제작된 한국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각본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는 한국 영화 역사 101년 만의 쾌거이자 우리나라 영화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는 방증이다. 봉준호 감독은 수상 기자회견에서 "감사하다. 큰 영광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건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쓴 건 아니지만, 이게 한국의 첫 오스카다. 아내에게 감사드린다. 또 제 글을 멋지게 화면에 옮겨준 멋진 배우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 최고 영화상의 하나인 아카데미상은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가 전년도 발표된 미국 영화 및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를 대상으로 수여하는 상이다. 1929년 처음 20여 명으로 시작한 심사 위원회는 2011년 기준, 3천여 명으로 늘어났고, 수상 부문도 25개로 늘어났다. 아카데미 회원 전원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된다. 아카데미상은 사실상 미국 영화인들의 집안 잔치로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는 것은 거의 난공불락이었다.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오스카 트로피를 무려 4개나 받았다. 한국 영화는 101년 만에 처음 아카데미상을 품에 안았고, 92년 전통의 아카데미상은 처음으로 비영어권 영화에 작품상을 수여 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도 1955년 미국 영화 `마티` 이후 두 번째였다. 작품상을 놓고 가장 치열하게 경합했던 영화는 샘 먼데스 감독의 `1917`. 백인 감독이 만든 영화를 누르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았다. 한국 감독이 가장 한국적인 상황을 한국어로 그려낸 영화가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먼데스 감독은 시상식 직후 "기생충은 마스터 피스(걸작)"이라고 극찬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은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저택에 사는 부자 가족의 대립 구도를 토대로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다룬 영화다. `기생충`의 성공은 이 영화가 표방하는 주제와 정서가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은 결과이다. 일제 식민지 변방에서 어렵게 시작한 한국 영화는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이만큼 성장해 이제 세계 영화의 중심 할리우드 무대에 우뚝 서게 됐다.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미국 문화의 자존심 같은 상징적 이벤트다. 그동안 백인이 만든 영어 영화에 집착해 왔다. 이 영화제가 비영어권 영화나 흑인 영화, 여성 영화에 개방적 태도를 취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한국 배우가 우리말로 말하는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것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이런 높은 문화의 벽을 넘고 우리 문화사뿐 아니라 아시아와 할리우드 역사까지 바꿔놓았다.

내게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으로 각인돼 있다. 봉 감독은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하기 때문에 영화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한 `살인의 추억`도 봉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 이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봉 감독은 스타 감독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고, 조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이번 아카데미 각본상은 그의 피나는 노력과 집념의 결과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하는 제2, 제3의 봉준호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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