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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뭐길래
정치가 뭐길래
  • 경남매일
  • 승인 2020.02.0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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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4ㆍ15 총선일이 코앞에 다가왔다. 금배지를 꿈꾸는 정치인들의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서 얼굴 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문지상에 보도되는 지역별 후보군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새 인물보다 구 인물이 더 많아 실망스럽다. 정치판에서 손을 뗐으면 좋을 듯싶은 정치 퇴물들(?)도 더러 보인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은 이제 한국 정치풍토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 됐으니 자업자득이다. 선거철만 되면 도지는 정치계절병은 마치 알코올의존증 환자처럼 끊기 힘든 유혹이자 금단현상이다. 떠도는 세평대로 정치병증은 백약이 무효임을 알 수 있다. 권력 지향적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은 정신 분석학적으로 말하자면 정치 유혹의 덫에 갇힌 권력 집착 증후군에 속한다.

지금 여당은 총선 필승을 목표로 득표 전략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선거대책 본부 발족과 함께 전임 국무총리를 총선 상징 지역인 서울 종로구 예비후보로 일찌감치 낙점했다. 한편 종로구 출마 압박에 묵묵부답이던 한국당 대표도 결국 여당 후보와 맞짱 뜰 각오가 섰는지 종로구 출마를 전격 선언하고 나섰다. 또한 보수 대통합이라는 난제 해결을 위해 군소 야당과의 협상을 급진전시키고 있어 막판 판세 요동이 예상된다. 그런 가운데 카운터 파트너로 등장한 안철수 씨는 야당 통합 대신 신당 창당을 서두르고 있으나 보수 대통합이라는 명제를 외면한 독불장군의 선택지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울산시장 선거의 청와대 개입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이 지상에 보도돼 백일하에 드러남으로써, 4ㆍ15총선은 예측불허의 안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주역(周易) 상경(上經) 20번째 괘(卦)는 풍지관(風地觀)이다. 괘상(卦象)은 풍행지상관(風行地上觀)으로 `바람이 땅 위에서 행하는 것이 관이다`로 해석한다. 계사(繫辭)인 관(觀)은 관이불천 유부옹약(盥而不薦 有孚顒若)으로 `깨끗한 몸가짐과 선한 정성으로 조상을 받들어 모시는 제사를 지낼 때의 순정한 마음으로 민심을 살펴보고 처신해야 만인의 추앙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관(觀)은 물건을 보면 `볼 관`(한자 평성)이 되고, 아래에서 보이게 하면 `보일 관`(한자 거성)이 된다. 임금(지도자)이 위로 하늘의 도(天道)를 보고 아래로 백성의 풍속(삶)을 보는 것은 `볼 관`이 되고, 덕을 닦으며 정사(政事)를 행해서 백성들이 우러러보게 하면 `보일 관`이 된다. 또한 관(觀)은 제사 지내려고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고, 천(薦)은 술과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며, 옹약(顒若)은 존경하는 모습이다. 자기의 정결을 이루고 가벼이 거동하지 않으면 그 믿음 가운데 있어 존경스럽게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무릇 한 나라의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은 주역 풍지관의 계사가 의미하듯, 내가 나 자신과 국민을 보는 `볼 관`이 아니라,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보일 관`에 대한 냉철한 자기성찰을 한 후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유권자는 존경하지도 믿어 주지도 않는데 제 혼자 잘났다고 설레발치는 정치철새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은 내 권리라지만, 머물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고정 표밭인 호남권과 보수진영의 아성이라는 TK, PK 지역에서 민심 변화가 있었듯이, 진영 논리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의 성난 민심은 이번 선거에서도 표로써 냉정하게 심판할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넘어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국가 위상과 높아진 국민 의식수준은 예전과는 천지차이다. 그러나 아직 정치판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쟁만 일삼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아무리 프로파간다(선전선동)가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유권자를 호구로 여겼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성숙된 시민의식을 간과한 채 자가당착에 빠진 사이비 정치꾼들의 금배지 열망은 백일몽에 불과할 따름이다. 주역 풍지관(風地觀) 괘의 심오한 뜻을 새삼 재음미해 본 후 출마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정치(政治)는 정치(正治)이어야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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