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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명절 `설날`
우리 고유의 명절 `설날`
  • 경남매일
  • 승인 2020.01.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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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설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며, 유풍(遺風)이고 설을 `구정(舊正)`이라 부르는 건 일제 잔재다.

 고종 32년(1895) 일본에 의지한 대한제국 김홍집(金弘集, 1842~1896) 내각의 친일 세력이 주도한 을미개혁(乙未改革) 이후 1896년부터 태양력을 실시하면서 양력설을 정초(正初)로 삼았다. 그러나 민간들은 그걸 따르지 않았다. 관청과 일부 개혁 인사들만 보란 듯이 `일본 명절`, `서양 설`을 쇠었고 백성들은 그런 이들을 비웃기 일쑤였다. 문제는 일본이 대한 제국을 삼키고 강압적으로 양력설만 쇠도록 밀어붙인 것이었다.

 그들은 음력 설을 쇠는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의 불령선인으로 몰아 압박했다.

 총독부령에 따라 내지인 즉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전 조선인 또한 일본의 양력 1월 1일 신정(新正)을 의무적 명절로 보낼 수 있도록 공포한다. 만약 이를 어기고 음력으로 명절을 보내어서 학교를 조퇴하거나 직장에서 조퇴하거나 노무를 멈추거나 그 외 조선식으로 세배 등을 하는 자는 총독부령에 따라 엄벌에 처할 것을 공포한다. 모든 경찰서 경찰과 주재소 순사들은 조선인들 중에 음력으로 명절을 보내는 자가 있는 경우 불문하고 체포하도록 한다.

 한편 설날 전에 고등계 형사들이 방앗간에 나가 영업을 하는지 감시하고 설빔을 입고 나온 조선 사람을 보면 옷에 먹물을 뿌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백성들은 양력설을 `왜놈 명절`이라며 더욱 경원시하게 된다. 음력설에 몰래 조상에게 술 한 잔 올리고 성묘하는 것을 `민족정신을 굳게 지키고 일본인들의 식민 지배에 항의하는 운동`으로 여기기도 했다.

 소설가이며, 방송작가였던 조흔파(趙欣坡, 1918∼1981) 선생은 "일본인들은 음력설을 못 쇠게 하려고 설날에 부역을 시키고 푸줏간과 방앗간을 강제 휴업시키곤 했다"며 "당시 일본인 몰래 음력설을 쇠는 건 민족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기개의 표시였다"고 술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80년대 후반까지 정부가 정한 설날은 양력 1월 1일뿐이었다.

 고향 방문과 차례, 세배, 떡국 먹기부터 윷놀이에 널뛰기까지 새해맞이를 모두 양력설에 하도록 정부는 몰아갔다. "허례허식, 이중과세를 하지 말자"며 음력설 추방 캠페인도 벌였다.

 양력 1월 1일부터 사흘은 휴무일이지만 음력 설날엔 하루도 못 쉬지 못하게 했다. 공무원은 물론 민간기업도 그런 지침을 따라야 했다. 몰래 나가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하는 사람이 생길까 봐 그날엔 휴가나 출장도 보내지 말라고 공문으로 지시할 정도였다. 그뿐인가.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했던 것처럼 설날 며칠 전부터 방앗간에 떡을 찧지 말라고 종용했다.

 정부는 음력 설은 옛날에나 쇠던 설, 즉 `구정(舊正)`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음력 설을 부활하자는 국내 민속학계와 유림계 등의 요청을 정부가 받아들여 1985년 매년 음력 1월 1일을 기점으로 민속의 날로 내무부 훈령 하에 제정했음을 공포하고 하루 휴무일로 정했다.

 이후 음력설은 3일 공휴일로 확대되면서, 1989년부터 음력설을 `설날`이라는 이름의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 후 음력설을 쇠는 가정이 대부분이 됐고, 양력으로 설을 쇠는 가정은 크게 줄어들었다.

 『수서(隨書)』 등 중국의 사서(史書)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 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했다고 한다.

 설을 지내는 것을 `설을 쇠다`라고 한다. 설날 차리는 음식은 `세찬(歲饌)`,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설날이 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흰쌀로 가래떡을 뽑아 굳힌 다음 썰어 떡국을 끓여 설날 차례를 지내고 세배하러 온 손님에게도 대접하는데, 새해 때마다 떡국을 먹으므로 아이들이 나이를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설날 흰떡을 사용해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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