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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보호법과 형사처벌의 공백
개인정보 보호법과 형사처벌의 공백
  • 김주복
  • 승인 2020.01.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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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김주복
변호사 김주복

 최근 공공기관 종사자(공무원 등)들이 업무상 취급하는 개인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2018년 11월경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중 한 수험생 응시원서의 개인정보를 알아내 그 수험생에게 "마음에 든다"며 사적인 전화 연락을 한 수능 감독관 사례가 그렇고, 2019년 7월경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경찰서를 찾아간 한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알아내, 카카오톡으로 "마음에 든다"고 메시지를 보낸 순경 사례가 그렇다. 당시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사건의 처리 과정을 주목했으나, 그 처분 결과에 많은 실망과 비판이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순경 사례에서는, 관할 전북지방경찰청은 순경에 대해 형사입건하지 않고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자체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2019년 12월경 경징계(견책) 처분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즉, `순경의 행동이 개인정보 보호법 제59조(개인정보 처리자로부터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에 위반되는가`로만 조사 방향을 정한 채, 순경이 개인정보 처리자가 아닌 `취급자`라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유권해석에 따라,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자신이 이용한 순경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능 감독관 사례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수능 감독관에게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9년 12월경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수능 감독관이 `개인정보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로서 이를 제공받은 목적 외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비록 수능 감독관의 행위가 부적절하지만 수능 감독관은 단지 `개인정보 취급자`에 불과하고,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 취급자에 대한 금지행위를 `개인정보를 누설 및 제공하는 행위`, `개인정보를 훼손ㆍ변경ㆍ위조 또는 유출 행위`로 한정해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이 사건과 같은 `이용행위`에 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지 않으므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그 같은 사정만으로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는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제공자 동의 없이 제공 받은 목적 외 용도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19조는 `개인정보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도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 용도로 이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74조(양벌규정)는 개인정보 부정 이용에 대해 법인과 그 법인에 속한 종업원의 형사책임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

 이들 조항을 종합해 체계적, 합목적적으로 해석한다면, 순경 사례나 수능 감독관 사례에 대한 법 적용이 충분히 가능하다. 즉, 순경이 `개인정보처리자`인 경찰청(또는 해당 경찰서)의 민원인 개인정보를 제공받아서 이용했고, 수능 감독관도 교육부의 수험생 개인정보를 제공받아서 이용했기 때문에, 순경과 수능 감독관은 모두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에 해당해 개인정보 보호법 제19조(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의 이용ㆍ제공 제한)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과 형법이 정하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법률의 규정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법치국가, 민주국가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이념적 가치인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사법기관이 형사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는 잘못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반대로, 정당하고 적정한 권한 행사가 돼야 할 상황에서 사법기관이 죄형법정주의라는 원칙을 핑계 삼아 소극적이고 나태한 자세로 형사법적 권한 행사를 게을리한다면, 이 또한 권한의 소극적 남용에 해당한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흠결이 있는 부분이 입법적으로 해결돼야 할 것이지만, 그전까지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의 틀 안에서 사법기관이 적절한 법률해석과 적용을 통해 적극적인 판단을 해야 하고,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결론은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와 사법기관의 권위가 연관된 문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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